[Artist]티스푼의 판타지

에디터 고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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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므 작가



현실을 사는 작가에겐 좀 더 과감한 공상이 필요하다. 오를 수 없는 산을 오르고 존재하지 않는 색깔을 보며, 닿지 못할 곳에서의 이룰 수 없는 삶을 꿈꾸는 것. 직접 찍은 사진들을 CG로 합성하는 라므 작가는 가감없이 판타지를 실현한다. 비록 회화의 물성이나 사진이 기반한 우연성은 비록 없지만, 작가는 이 방식으로 의미를 찾는다. 여전히 어떤 형태든 상상을 일상에 현시하는 건 언제나 멋진 일이니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선을 가진 산과 평원. 그곳에 평온한 달과 별이 뜨고 세상의 한 축 같은 나무가 자란다. 때로는 사람의 자취도 있다. 아스라한 꿈속에서 보았던 풍경처럼, 라므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
언뜻 사진처럼 보이는 이것은 혹시 그림일까. 라므 작가는 “그림을 전혀 못 그린다”고 고백한다. 오로지 사진으로 작업하는 이유다. 직접 찍은 사진 위에다 그래픽의 힘을 빌려 일상을 오려내고, 그 안에 티스푼만큼의 마법을 부여한다. 다만 일상으로의 회귀와 적용은 늘 필요하다. 상상의 가공으로 일상을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작업의 목적이니까.

[cloud moon] 1000x1498px, 아이폰 & 필름 & 디지털, 캔버스에 프린트, 2019


[dear my deer] 1000x1250px, 아이폰 & 필름 & 디지털, 캔버스에 프린트, 2019


작가는 ‘예쁜 이미지’에 본능적으로 끌린다고 했다. 사람마다 그 정의는 각각 다르겠지만, 아마 평소 작가가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판타지가 실린 완벽한 일상의 모습이었리라. 아이슬란드, 스위스 등지를 여행하며 카메라에 담은 대자연을 재료 삼아 그는 아직 한번도 본 적 없지만 언제나 보고 싶었던 이미지를 떠올리고 실현한다. 해와 달과 별이 있고, 누군가의 쓸쓸하지만 결연한 뒷모습이 있는 풍경을. 노을빛처럼 은은하게 팽창하는 파스텔톤의 하늘은 어쩌면 그림의 여백을 채우는 상상의 색이 아니었을까.
 “우연에 기대는 사진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내가 의도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흥미롭죠.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초기 작업은 사진의 느낌이 강했는데, 요즘은 그림에 더 가까워 보이더라고요.”

[꽃을 따 줄게] 1977x3024px, 아이폰, 캔버스에 프린트, 2019

[상상] 1000x1498px, 디지털, 캔버스에 프린트, 2019


작품은 흡사 작가의 일상과 판타지 사이에 다리 하나를 놓은 느낌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현실은 여전하되 꿈꿔온 이상향에 가까운 대안이다. 못다 한 상상을 그래픽 작업으로 풀어내면서도 작가는 다만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 데 주력한다. 마치 그것이 우리 삶에 꿈이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을 역설하듯.

[동화] 1000x1516px, 아이폰 & 필름 & 디지털, 캔버스에 프린트, 2019


이제 막 작가로서의 첫 걸음을 뗀 단계. “대중에게 먼저 사랑받고 싶다”는 라므 작가가 나아갈 방향은 꽤 명징해 보인다. 우리가 속한 하루와 세계를 바꿀 수 없다면, 좀 더 달콤하고 온화하며 아름다운 몽상의 색을 일상에 덧입힐 방법을 찾아내는 것. 거기엔 티스푼 한 술만큼의 마법만 있으면 된다. 하루하루가 좀 더 깊고 청아한 맛을 내도록.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
사진 제공 라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