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조금 '특별한 협업'으로 탄생한 이 그림의 비밀!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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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두민



2019년 10월 25일 독도의 날,

한 작품이 공개됐다.


얼핏 일반적인 동양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작가들의 '특별한 협업'으로 탄생했다.

바로 극사실주의 화가 두민과 AI가 함께 만든 것!


* '인간화가와 인공지능화가와의 최초 협업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작가 두민



흔히 인간의 고유영역이라 여겨진 창작과 예술.

이 생각의 바탕에는 인간과 AI의 경계를 확실하게 구별하려는 태도가 깔려있다. 

인간인 '나'를 대체해버리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작가 두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직접 해보니

AI와 예술가는 공존할 수 있단다.

그렇게 훨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단다.


두민의 용감한 행보는 이 뿐만이 아니다.

작가는 국내에 미술 NFT 바람이 채 불지도 않았던 때부터

앞서 나가 NFT 작품을 제작했다.


남들이 뭐라하건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최고라 말하는 작가 두민.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을 찾고 있을지 궁금해 작업실을 찾았다. 



본 인터뷰는 '윤기원의 아티스톡'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눌러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주사위 작가 두민 입니다.


-집안에 예술가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이 경상북도 초대 작가 도팔량 *위 이십니다. 

또 큰형도 작가입니다. 도성욱 작가, *아래  소나무랑 숲 그림으로 활동하시죠.



-그렇다면 ‘두민’은 작가명이겠군요!

맞습니다. 원래 제 본명은 ‘도성민’이에요.

영어로 이름을 쓸 때, ‘Do’를 쓰다보니 ‘도’가 아닌  ‘두’로 바꿔버렸어요. 

전업 작가가 되기로 했던 때에, 이름도 바꿨던거죠. ‘두민’으로.


-집안에 예술가가 많았으니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에도 큰 반대는 안 하셨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아뇨. ‘작가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삼형제 중에 막내인데요. 우선 큰형이 일찍이 작가의 길로 들어섰던 터라, 한 집에 두 자녀가 미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인 부담도 컸어요.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더 큰 영향은 어머님이었어요. 어머님은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너무 잘 아셨습니다. 자식은 힘든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셨죠.



-부모의 마음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그럼 미술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그땐 서클 활동을 하잖아요. 어떤 서클에 가입할까 고민했는데, 미술부에 들어가고 싶더라고요.  제 고등학교는 미술부가 가장 유명하기도 했고요.

하루는 어떤 선배가 교실에 찾아와서 “도성민 나와! 너 점심시간 끝나고 미술부로 내려와!” 하더라고요. 미술실도 하필 지하예요. 무서웠죠(웃음). 

가봤더니 팔레트 하나, 붓 20호, 종이 딱 놔뒀더라고요. 사진 하나 주더니 내일까지 그려보래요. 밑도 끝도 없었죠. 그런데 전 또 그걸 했어요. 이틀 만에 4절지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고 나니까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너 오늘부터 미술부야! 

알고 보니까 같은 학교에 다닌 친형이 서클선배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대요. “내 동생 미술부에 가입시켜서 미술 한번 시켜보라”고요.



-형도 알고 있었군요. 동생의 예술을 향한 마음을! 그렇게 바라던 그림 그리는 생활은 어땠나요?

미술부에 들어간 후, 거의 미술에 미쳐서 지냈어요(웃음). 태어나서 처음 느낀 희열도 그림 덕분이었죠.

수학여행으로 설악산에 갔다가 엽서를 하나 사뒀어요. 미술전시 때 그리려고요. 똑같이 그리겠다고, 약 50호 캔버스에 아주 얇은 붓으로 작업했어요.

그 작품은 정말… ‘인생의 마스터피스’랄까요? 딱 끝내는 순간, 이걸 내가 정말 그렸나 싶었어요. 그리곤 미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림이 나한테 이런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앞으로 계속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인생의 마스터피스’라고 칭한 작품도 극사실의 기법을 따른 듯 합니다. 극사실회화에 일찍 들어선 셈이네요!

제 고향은 구상 회화의 메카, 대구입니다. 

어릴 때부터 당연히 구상 작품을 그려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아버지의 그림도 극사실(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까운 구상화였죠. 솔직히 추상 그림을 보면서 ‘이것도 그림이야?’ 의문을 갖기도 했었어요. 어릴때는요(웃음)!

대학 입학 후에는, 미술시장부터 교수님까지 다들 추상, 단색, 미니멀이 주류라고 하더군요. 미술계 전반의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저처럼 하이퍼리얼리즘 작업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늘 부딪혔죠. ‘졸업하면 간판쟁이 할거냐’는 말도 들었고요.



-저런, 상처였을 것 같습니다.

아뇨, 더 맞섰습니다. 졸업작품으로 아예 간판을 그렸거든요(웃음).

당시 저희 학교가 북아현동에 있었어요. 바로 옆 동네가 이대, 신촌, 홍대의 번화가였죠.  화려한 네온 간판들…특히 빛에 흔들리며 물속에 비치는 네온 간판들을 그렸어요. 또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 제가 관찰할 수 있는 대상들을 그림으로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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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학원 강사도 오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생계를 꾸리면서 작업도 하기 위한 선택이었겠죠?

네, 12년 동안 미술 입시학원 강사로 일했습니다. 그땐 정말 경제적, 현실적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했으니까요. 



-생업을 위한 직업과 작가로서의 작업. 하나도 어려운데 병행하는 분들은 참 대단합니다. 

그 과정에서 딜레마를 겪을 수 밖에 없어요. 

제 경우엔, 강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는 아내가 임신 마지막 달을 앞두고 있었어요.  내가 지금 하는 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는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 그게 참 힘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딜레마를 돌파했나요?

전 ‘처음’을 생각했어요. 처음 미술을 하고자 했던 이유요. 제 꿈은 작가였어요.

계산을 한 번 해봤어요.  낮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 작업실에 와서 그림을 그려도요,  1년동안 그릴 수 있는 작품 수가 100호 3~4개밖에 안되더라고요. ‘과연 내가 작가라 할 수 있나?’ 싶었습니다.

고민을 털어놨더니, 듣고 있던 분이 ‘이미 주사위는 던져놓고 왜 고민을 하지?’ 하더라고요.



-주사위와 드디어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군요!

맞습니다. 제 시그니처, 주사위가 나오게 된 계기지요. 

주사위는 제 자신이자 동시에 저의 가장 기본적 욕망입니다. 작가의 삶으로 갈 때 나에게 어떤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기대와 희망. 제가 그리는 것은 결국 저의 염원이기도 해요.



-두민 작가에게 주사위 그림이란 일종의 자화상이기도 하겠어요.

그렇지요. 흔히 저를 정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하이퍼 작가라 여깁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내 모습을 투영시킨 또 다른 나를 그리고 있는 작가’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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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외에도 기획자로서의 활동도 인상적이더라고요.

지난 몇년은 팬데믹 때문에 미술계도 힘들었어요. 전시도 활발히 열 수 없었거든요.

그 와중에 ‘아트 팬데믹’이라는 행사를 기획했죠. 매달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작가 작업실을 공개하고, 작품 경매도 하고, 가나아트 프린트베이커리와 같이 프로젝트도 진행했고요.

저는 동시대 작가들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모여서 기획하고, 전시를 만들어나가는게 서로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이죠. 젊은 작가한테는 용기를 주고, 삶의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직접 움직였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작가, 알지는 못하지만 그림이 좋았던 작가들한테 따로 연락을 했죠. 제가 생각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또 실행해보는 경험을 많이 하고 있어요.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가요?

네! 저는 무조건 ‘경험주의’를 외치는 사람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철학 중의 하나예요. 매사에 직접 해보고 판단하려고 하죠.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하지마’ 그러면 ‘왜 안 해야 되지? 그럼 더 해봐야지’ 하는 사람이죠. 남들이 하지말라는 건 다 해봐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알아요?’ 라고 묻는다면 ‘먹어보고 내가 판단한다’고 답할거예요.



-작가님이 ‘경험주의자’라고 하셔서 그런지 새로운 것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자격조건라고 해야하나. 저는 그게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현재 누군가가 하는 결정된 이야기들…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런 말에 연연하다보면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없죠. 특히 작가는요.

두려워할 이유도 없어요.  작가가 가장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게 새로운 것이죠. 인공지능과의 협업, 아직 초기인 NFT 진입 작업도 그런 마음으로 뛰어들었어요. 

기존의 길로 계속 걸어가는 게 아니라 자꾸 조금씩 실험을 하려고 해요. 재료가 됐든 작품이 됐든. 제 작업의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경험하고 싶은건 뭔가요?

작가로서 가장 큰 숙제를 말씀드리는걸로 대신할게요. ‘주사위 작가’라는 타이틀을 지우는 일입니다.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말이지만, 동시에 넘어야 할 큰 숙제이기도 해요. 역시 딜레마죠(웃음). 


-지우려는 이유는요?

과거 주사위를 그린 두민과 지금의 저는 분명히 다르거든요. 경험, 살아온 과정도 이젠 다 달라졌어요.

작가는 특정 대상, 대상의 형태나 색깔같은 외형을 그리는 게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저의 철학이죠. 그리고 이젠 제가 무엇을 그리든, 주사위가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한 발 나아가고 싶은 것이죠. 주사위 밖에 못 그리는 작가, 주사위만 그리는 작가가 아닌 어떤 것이든 그릴 수 있고 무엇이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로요. 그래야 평생 작업을 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작가님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뭔가요?

한 단어로 ‘ing(진행형)’입니다.

작가의 삶 자체가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는거라면요. 기술과 문화의 발달, 환경의 변화, 시대의 흐름과 함께 결이 만들어지겠죠?

사회의 속도, 철학과 정치를 비롯한 모든 것이 흘러가는데 혼자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이건 작가가 아닌거죠. 죽은 작가죠. 

때론 세상을 앞지를 수도, 뒤쳐질 수도 있지만! 결국 시대와 함께 걷고 있을 때,  비로소 새 작품도 탄생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술은 현재 진행형 ‘-ing’라고 말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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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민 작가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 학사, 서울


개인전

2021  세계일보 창간32주년 기념전 시계미술전, ENTOPY ILLUSION, 금산갤러리, 서울

           Moving Fantasia, 뮤지엄 다, 부산

2019  The boundary of Fantasy,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3  Enjoyable, 가나아트부산, 부산

          Enjoy the Moment, 동원화랑, 대구

2011  Fortune Holic, 가나컨템포러리, 서울

2009  Fortune-Janus, 가나아트강남, 서울


주요 수상

2005 단원미술대전 입선, 단원미술관, 안산

2003 중앙미술대전 입선,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뉴-프론티어공모전 입선, 단원미술관, 안산

2002 전국대학미술대전 특선, 청주대미술관, 청주


AI ART 인공지능화가와 인간화가의 세계 최초 협업작품  

“Commune With... 독도” 기획 및 창작


교육연구소

두들아트창의술 연구소장

AI X ART 갤러리 창의교육연구소장

한양대학교 미술영재 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