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미대생은 비 맞는 새를 보면서 무슨 생각 할까?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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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해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자작나무 길을 걷던 한 미술학도는

비를 피하고 있는 새를 보았다.


그저 제 날갯죽지 안에 고개를 묻은채

비를 맞고 있는 새들의 모습.


'저 새들에게도 따뜻한 집이 있으면 좋을텐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미술학도 정해윤은 자신의 화폭 안에

새들을 위한 공간을 짓기 시작했다.


각각의 공간이 쌓이고 겹쳐져

만들어낸 조화.

그 속에서 홀로 또 함께 머무는 새들.

이제 새들은 편안하고 따뜻해보인다.


따뜻한 감수성의 미술학도는

해외 관람객의 마음도 움직였다.

국내 학생으로서 여러 해외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인생 첫 개인전도 해외에서 개최했다.

그렇게 조용하지만 강하게

정해윤의 기록을 만들어왔다.


어느덧 약 20년차 작가가 된 정해윤의 이야기가

궁금해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본 인터뷰는 '윤기원의 아티스톡'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눌러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정해윤 작가입니다. 반갑습니다. 찾아오기 어렵지 않으셨어요?



-입구에서부터 큰 작품이 있어서 찾기 쉬웠습니다. 작업실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네. 그게 ‘플레이그라운드’라는 작품이에요.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한 번 놀다 가자는 말을 생각하며 이름을 붙였어요. 

돌 자체가 새를 대신하는 이미지예요. 그 위에 시계는 사람들의 인생을 의미하고요. 시간은 누구한테나 다 똑같이 주어지잖아요.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는 사람마다 다른 거고요.



-말씀해주신 새를 그린 작품도 보이네요. 저도 이 작품을 좋아해요. 

이거는 꾸준히 지금까지도 제 작품을 찾는 분들이 많이 좋아하시는 작업이에요.

처음에 서랍 작업을 할 때, 작품 안에 생활 공간을 넣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목이 ‘아파트(apartment)’였죠. 아파트도 밖에서 보면 똑같아 보여도, 그 안에 정말 다양한 구성원과 삶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실 주체는 아파트 속의 구성원들이죠. 작품 속 서랍의 투시가 제각각이죠? 다시점이에요. 다 주체적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개별이 모여 전체가 됩니다. 개별은 전체를 깨서는 안되고, 전체도 개별을 무시하면 안돼요.

그런 의미를 함축해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한 마디로 말하면 ‘개별과 전체의 조화’랄까요.

실제론 저렇게 구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어요. 하지만 그림에서는 완벽하게 구조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죠.



-새와 서랍. 왜 이 소재를 작품에 담게 됐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학생 때, 학교 수업 마치고 가는데 비가 엄청 내렸어요. 12월 다 됐을 때니까... 으스스했죠. 교내에 자작나무가 엄청 많았는데요. 거기에 앉은 까치가 비를 그냥 맞고 있는 거예요. 비를 피하는 방법이 자기 날갯죽지에 고개를 집어넣고 있는 거래요. 너무 안쓰러웠어요.

쟤들한테도 따뜻한 집이 있으면 좋겠다, 쟤네들을 가장 따뜻한 공간으로 옮겨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러다 서랍을 찾은 거예요. 서랍이라는 이미지가 신선하게 보인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죠. 그런데 서랍 위에 까치를 그리자니 너무 크더라고요(웃음). 조금 더 작은 새, 박새를 그리게 됐죠.



-왠지 박새와도 인연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사실... 저는 공모전으로 용돈을 벌었어요. 열심히 그리고 작품을 내면 수상 상금을 받잖아요.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처음으로 박새를 그려 제출했어요. 우수상으로 백만 원을 받았고요. 그렇게 해서 인연이 된 소재가 박새네요. 생각해보면 뭐든 그냥 덥석 나온 건 아니에요. 고리처럼 이어져있죠.



-공감도 능력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능력이 좋은 편인가요?

사람이 공감이라는 게 중요하잖아요! 저는 사람, 동물… 가리지않고 공감을 좀 잘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그냥 보고 지나가지를 못해요.

저 어릴 때도요. 쥐가 죽어 있어도 불쌍하다고 쓰다듬었대요. 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한가 봐요.



-이 작업은 제목이 <플랜B> 더군요. 어떤 이야기가 담긴 그림인지 직접 듣고 싶었어요.

사다리타기 아세요? 시작점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게임이죠. 

‘플랜 B’ 속 수많은 실타래와 선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에요. 사다리게임과 비슷해보이지만 달라요. 사다리게임은 갈 길이 정해져있죠. 규칙이 있으니까. 그런데 ‘플랜 B’에서 이 수많은 길은 내가 선택할 수 있어요. 어떤 선을 잡으면 또 다른 길이 나오거든요.

‘플랜 B’라는 건, 플랜 A가 아니더라도 내가 선택해서 후회하지 않는 길을 향해서 간다는 거예요.

사람 인생이 어떻게 ‘플랜 A’로만 가요? 대부분의 사람은 저처럼 플랜 B,C,D로 왔었을 거예요. ‘플랜 A’는 어떻게 보면 그냥 희망? 꿈? 이런 거였을 수 있겠죠. 어찌 보면 ‘플랜 A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진짜는 ‘플랜 B’ 같아요, 저는.

어떤 길을 선택해도 자기가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해서 가기! 만약에 실패했더라도 배운 게 있잖아요. 어쩌면 실패로 가는 길은 없을 수도 있어요.



//



-작가 정해윤의 인생도 플랜B였다니 조금 의외예요. 원래는 작가를 꿈꾸지 않았나요?

저는 어렸을 때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저는… 꿈을 좇는 사람도 아니에요. 꿈을 향해서 내 생활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자연스럽게 지금 작가가 되긴 했는데… 제가 화가 되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 웃었을 거예요. 그래 네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손재주가 있었으니까 그런 쪽 일을 하겠구나 정도로 생각을 한 사람들은 있겠지요.

어릴 때, 중학교 등록금마저도 내기 힘든 형편이었어요. 그러니 대학은 제 머릿속엔 없었죠. 항상 제 현실에 맞게 살았어요. 대학진학은 포기했죠. 철이 일찍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빨리 돈을 벌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자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고3 때 일찍 취업해 직장생활을 했죠. 

어느날 회사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언니가 입사를 했는데... 그 언니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아, 대학을 갔어야 되는구나. 그때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수중에 얼마 안 되지만 제가 처음으로 번 돈을 갖고 학원으로 갔어요. 얼마가 들지도 모르면서.

식구들에겐 비밀이었어요. 회사 간다고 나와서 단과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고 학력고사를 치뤘죠. 그렇게 첫번째 대학에 진학했는데, 미술교육과였어요.



-그 이후에 또 다시 대학에 진학한 게... 서울대 동양화과였군요!

네, 마냥 그림만 그리는 작가가 된다는 건... 제겐 사치였어요. 그래서 사범대를 갔던거죠. 빨리 미술교사가 돼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IMF로 다 힘들어졌고, 미술 교사도 안 뽑는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스테인드글라스화 일을 시작했죠. 그거 하면서 ‘내 작업을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스테인드글라스화에는 제 이름이 안 남거든요. 저는 그냥 직원인 거죠. 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어요. 하루는 클라이언트가 작업장에 왔는데, 저희 사장님이 저를 홍익대학교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저는 작업 실력으로는 충분히 인정을 받은 거 같은데… 학벌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해서 서른에 다시 입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수능을 3년간 열심히 준비해서 두번째 대학에 동양학과로 진학했죠.



//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동기 애들과 12~14살 차이나는 왕언니였어요. 애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일하다가 대학에 왔으니 아무래도 학생이었던 친구들과는 많은 면에서 달랐죠. 그래서 저는 좀 혼자 지냈던 거 같아요. 혼자 작업 열심히 하고.



-마음가짐도 좀 달랐을 것 같아요.

네. 단순히 학교를 다니려고 대학에 온 게 아니잖아요. 저는 앞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학생이었던 저의 작업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공모전밖에 없었어요. 당시 국내는 학생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죠. 그래서 해외 공모를 열심히 찾고 지원했어요. 

국내에선 학생 때 할 수 있는 단원미술대전 등에 참가했고,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어요. 게다가 해외공모전도 내는 것마다 좋은 성적을 거뒀죠. 그 결과로 영국, 파리에서 전시도 할 수 있었어요. 그 때가 대학교 3학년이었어요. ‘학생 작가’라면서  전시 의뢰가 들어왔었죠.




-지금의 새 작업이 그때부터 발전해온 거라고 들었어요.

대학 3학년 때 제 작업의 뿌리가 만들어졌죠. 그때 서랍 작업이 처음 나왔어요. 저는 잘 몰랐는데 서랍이라는 이미지가 생소했나 봐요. 소재가 동양화인데 이런 작업이 있어? 라는 얘기도 들었고요. 그냥 그림만 보면 동양화 작업이라고는 생각을 못하시더라고요.

해외에서 배운 건 또 있어요. 동양화냐, 서양화냐.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그냥 이미지로, 작품으로만 회자된다는걸 알았어요. 



-2008년, 인생 첫 개인전을 해외에서 열었는데... 당시 어땠나요?

공모전을 외국으로 내다 보니까, 작가들 중에서 한 명을 뽑아서 개인전을 열어준다는 곳도 있었어요.  갤러리나 조건이 좋았던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저한테는 그게 다 경험이잖아요.

영어도 한 마디 못하는데 해외에 가고, 목공소 가서 화판짜고… 전 정말 그림 그린 종이만 둘둘 말아서 가져갔거든요. 직접 다 해봤더니 겁이 없어진 거 같아요. 이후에 일 때문에 해외에 많이 나가게 됐을 때도 ‘하지 뭐’ 싶더라고요.



-해외 활동을 위해 노력한 일들 중 기억에 남는 것도 궁금해요.

저는 제 그림의 평론가도 해외에서 직접 찾았어요.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싶었거든요. 파리 8대학의 모 교수님에게서 평론을 받고 싶었죠. 그래서 직접 찾아 갔어요, 평론을 써달라고. 그 정도 용기는 있어야 하잖아요!

해외 활동으로 남은 건... 스스로 경험을 쌓은 것과 그 과정에서 제 그림을 알아봐 주는 해외 팬이 생겼다는 게 가장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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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을 알기가 힘들었는데,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난 얼마 동안은 전시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기존 작업의 연장선이 아니라 신작으로 전시하고 싶은 욕심이 컸어요. 제가 항상 4년에 한 번 터울로 개인전을 열고 신작 등을 공개해왔거든요.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키아프(한국 국제 아트페어)도 신작 나올 때까지는 안 나가겠다고 생각해서 안나갔죠. 

그래도 작업은 계속 했어요. 해외에 보내야 하는 일들이 계속 있었거든요. 전속 갤러리를 통해서 해외 아트페어는 매해 나갔고요.


-이제 전속계약은 종료됐고, 앞으로의 계획은요?

저도 기대돼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처럼... 필연적으로 또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재밌게 보여주고 싶어요. 전시도 다양하게 해보고 싶고요.  개인전 준비 할 때마다 항상 즐거웠어요. 그리고 늘 제가 더 궁금했었거든요. ‘이게 전시장에서 짠 하고 보여진다면 어떨까?’ 하고요.



-정해윤 작가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요?

그냥 운명 같아요. 이유는 딱히 없어요. 내가 현재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이 일이라서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작가가 우연히 됐어요. 저한테 항상 시험을 한 거 같아요, 세상이. 참 쉽게 가게 하지 않더라고요. 쉽게 가게 하지는 않지만 기회는 항상 줬어요. ‘할 수 있니 없니?’ 그 길이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어쨌든 선택을 했어요. 그렇게 선택해서 온 길이 나를 발전시키고, 또 원하는 길로 더 가까이 가게 했던 거 같아요.



-플랜B를 설명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어떤 걸까요?

예술은 사기다!

예술이 ‘그럴듯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은 그냥 물감일 뿐이었는데 사고 싶게, 갖고 싶게 하잖아요.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겠죠. 그게 아트라고. 하지만 전 아트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안 살았기 때문에. 전 예술가, 화가라고 하는 것도 쑥스러워요. 그냥 직업이 그림 그리는 거라고 해요. 오히려 주변에서 ‘예술가시네요’ 그러는데… 유럽 사람은 반이 예술가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웬만하면 좋은 사기, 감동을 주는 사기를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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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윤 작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2020    Memories. 쉐라톤 서울팔레스호텔 갤러리, 서울

2017    역학관계, 마이클슐츠 갤러리, 베를린,독일

2016    PLAN B, 가나아트갤러리 서울

2012    TIME TRACK, 가나아트갤러리 서울 

2011    Relation, FNart space파이낸셜, 서울

2009    가나아트갤러리, 서울

2008    Seeing & Hiding, 뉴데이스 갤러리, 런던


단체전

2020   TEFAF, Masstricht, 네덜란드

2019   역단의 풍경, 자하미술관,서울

            상하이 ART021, 상하이

            artmonte-carlo,모나코

            Korean’s sprit, Artvera’s 갤러리, 제네바

            ArtGeneve 2019, 제네바

            TEFAF, Masstricht, 네덜란드

2018   Asia Now, 파리, 프랑스

            ArtGeneve 2018, 제네바

            TEFAF, Maastricht, 네덜란드

            TEFAF New York

2017   Korean’s Spirit, Galerie Artvera’s, 제네바, 스위스

            TEFAF, Maastricht, 네덜란드

            100인 아티스트 미디어파사드전, 장욱진미술관, 양주

2016   TEFAF, Maastricht, 네덜란드

2015   MOMENTUM ART/OMI ,토탈미술관, 서울

            TEFAF, Maastricht, 네덜라드

2013   정해윤 박형근 2인전, 갤러리잔다리, 서울 

2012   Mapping the gray, gallery 잔다리, 서울 

2011   시대정신, 인터알리아, 서울

             Art gallery “Le Loggy” , Assisi, 이탈리아

2010   “Korea Tomorrow”  SETEC , 서울 

             THE MULTIFUL전, 표갤러리 , 서울 

             Transformed Land, 몽골국립모던아트미술관, 울란바토르, 몽골

             Vessels of role, Do window, 갤러리현대, 서울

            결핍된주체, 인터알리아, 서울

2009   vessels of role, 윈도우전, 갤러리현대, 서울

            Up-and-comers 신진기예전, 토탈미술관, 서울

           사물의 대화법, 갤러리현대, 서울

2008  준 크레아시옹(jeune creation 08) 국제영아티스전, la villate홀, 파리

           Trompe-l'oeil in Imagination, 카이스갤러리, 서울

           오픈 스튜디오, 아트오마이, 뉴욕

           Up-and-Comers 신진기예전, 토탈미술관, 서울

           다카르비엔날레 특별전, 다카르, 아프리카

2007   Hellow chelsea 2007, 뉴욕


레지던시 및 수상

2019   씨떼 국제공동체 레지던시, 파리

2011   Ginestrelle Artist 레지던시, 아씨씨, 이탈리아 

2010   씨떼 국제공동체 레지던시, 파리,프랑스

2009   버몬트스튜디오, 버몬트, 미국

2008   장흥아뜰리에, 장흥, 한국

2008   아트오마이 국제레지던시, 뉴욕, 미국

2008  뉴욕아트오마이 인터네셔널 아티스트 콜로니 최종2인 선정작가, 파라다이스문화재단

2008  쥰 크레아시옹 08, 라 빌레뜨홀 , 파리 

2006  단원미술대전 최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