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국전 수상 3일 만에 취소된 미술 천재 고등학생, 지금 뭐 할까?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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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유근택


1982년, 제1회 가을 대한민국미술대전.

한 소년의 작품이 입선에 올랐다.



강아지가 잠든 시골집 풍경을 그린 그림.

평화롭고도 목가적인 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계속 눈이 간다.

아마 심사위원들도 그랬으리라.


작가를 꿈꾸던 소년은 수상 소식에 마음이 벅찼다.

교복을 단정하게 챙겨입고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희망찬 이야기는 여기까지.


'24세이상만이 작품을 출품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유로 들어

이에 어긋났다며 입선 수상 취소,

그와 함께 전시장에 걸린 그림마저 3일 만에 내려졌다.


애초에 주최 측이 자격 규정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탓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수상 취소 결정은 변함이 없었다.


"소년은 어땠을까? 과연 그림을 계속 그렸을까?"


답은 ‘그렇다’.


소년 유근택은 이 일을 뿌리 삼아

더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그에게 예술은 ‘숨’과 같다.

자신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그림이란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까?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본 인터뷰는 '윤기원의 아티스톡'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눌러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독자들에게 직접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화가이자, 학교에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으로, 또 집에서는 한 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으로 사는 유근택 입니다.




-작업실이 여러 공간으로 나뉘어있어요. 신기합니다.

실은 이게 원래 다가구 주택이었어요. 네 가구가 살고 있던 집이었는데요. 한 가구, 한 가구 나가시면서 지금은 건물을 통으로 다 사용하고 있죠. 여기는 층고가 그래도 조금 높아요. 그래서 500호 크기의 조금 큰 작업을 여기서 주로 하죠.

 


 -그런데, 좀 낯선 냄새가 나요. 뭐랄까. 설명하긴 어려운데...

아! 동양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료 때문에 나는 냄새일 거예요. 물감 안료를 고착하기 위한 접착제, 아교 특유의 향이 있거든요. 유화 같은 서양화 재료와 또 다른 향이죠. 저야 익숙해져서 잘 모르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는 분들은 간혹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하에도 공간이 있다고요?

네. 지하에선 조금 작은 크기의 작업을 해요. 목판화, 드로잉… 뭐 이런 것들요. 종종 목판 조각 작업을 하는 때도 있고요. 또 목판화를 제작하면서 남은 파편들을 활용해서 새로운 작업으로 만들어내기도 하죠.

이것 봐요. 미네무라 선생의 얼굴에 내 자화상을 집어넣은 거예요. 두 개의 얼굴이 섞여 있는 거죠. 이런 장난을 이 공간에서 많이 해요. 뭐랄까. 주로 이제 술 먹은 다음 날 약간 좀, 집중이 안 되고 그럴 때. 여기 앉아서 기분 전환을 하는 거죠.



-그림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중학교 2학년 때죠. 초벌구이접시에다가 그림을 그려오란 숙제가 있었어요. 수채화 물감 검은색으로 농담을 살려서 그림을 그려서 간 거예요. 약간 그 동양화 느낌 나게. 근데 그게 대박이 났죠. (웃음)

당시 칠판에 한 명씩 나와서 이렇게 한 개씩 놓고 이렇게 심사를 봤는데요. 선생님이 "너는 B야, C야, D야" 그랬어요. 굉장히 엄격하셨다고요. 그러다 딱 내 순서가 됐는데 갑자기 조용한 거예요. "이 작품은 특A가 넘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자마자 애들이 다 환호를 했어요.

 그러더니 그날 저녁에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는 거예요. "근택아, 요즘 화가들은 다들 자가용 굴리고 좋은 집에서 살고 그런단다" 하시곤, 화실 주소를 하나 적어주셨어요. 그때부터였을거예요. 미술 선생님께 말씀 듣고 찾아간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죠. 재밌었어요. 그림 그리는 거 자체가.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하루도 안 빠질 정도로요. 




-당시 미술 선생님 안목이 뛰어나셨네요!

정말 감사한 게, 그 선생님이 저를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미술을 시작한 걸 아시곤 "너 그럼 요번에 개인전을 좀 만들어 봐" 하시더라고요. 덕분에 학교 복도에 중학교 3학년이 '유근택 개인전'을 열었다니까요. 제 그림 30점을 전시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놀라운 얘기죠. 그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배려를 많이 해주신 거죠. 근데... 그 선생님 참 보고 싶은데... 어떻게 만날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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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개인전도 놀랍지만, 저는 작가님이 고등학생 때 국전에서 상을 탄 것이 더 놀라웠어요.

그건 저한테도 잊을 수 없는 일이죠. 옛날 집의 구석을 찍은 사진을 우연히 봤는데, 참 느낌이 좋더라고요. 한 번 그려볼까? 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 '이건 국전을 내 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입선이 된 거예요! 깜짝 놀랐죠. 소식을 듣고 기뻐서 막 뛰어서 집에 오니깐 사람들이 다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도 다들 축하한다 그러고요.

눈물이 나서 막 왈칵 울었다니까요. 집에서 제가 그림 그리는 걸 다들 반대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 나를 어쨌든 응원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뜻깊은 상이 어쩌다가 3일 만에 취소가 되었나요?

여름 교복을 딱 예쁘게 차려입고 전시장에 갔어요. 그런데 대뜸 학생이 여긴 왜 왔냐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상 받으러 왔는데...

당시 관장실로 따라갔지요.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림 그리는 이유, 태도 같은 것들? 뭐 그렇게 한참 이야기하고 나왔는데요. 결과적으론 제 그림은 3일 동안만 전시장에 걸려있다가 내려졌어요.

 



-기사에도 나왔다면서요!

그 사실을 어떻게 기자가 알게 된 거예요. 신문에 막 내 그림이 나오는데, 대상 작품 보다 더 크게 나온 거 같아요. (웃음) 기사 제목도 '고등학생 수상 취소 소동'이고, 또 제 얼굴도 뭔가 되게 반항아적인 느낌으로 나왔고요.

당시로는 너무 아쉽기만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일이 살이 많이 됐어요. 미국에서, 한국에서 편지가 오고, 또 주변 응원도 많이 받았고요. 수상 취소된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로요!


-판매하셨나요?

에이 (웃음) 그 작품은 팔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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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역시 이벤트가 가득했나요?

홍대 동양학과에 진학했는데요. 대학 때는 그 당시의 갈증을 해소하기에 급급했어요. 현대미술에 대한 담론이 피를 튀기게 오가는데 여기서 내가 뭘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건 '내가 뭐가 다른 거지?'란 질문이었어요. 친구들하고 놀 때는 열심히 놀았죠. 맨날 디스코장 가고, 춤추고, 술도 마시고. 그런데 집에 가서는 몰래 그림 열심히 그렸거든요. 일부러 보이지 않는 데서 열심히 그렸어요. 컨셉으로. (웃음)

 집에서 혼자 그림 그릴 땐, 되게 불안했어요. '그림이 나한테 무엇인가?'라고 하는, 일종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불안했죠. 그래서 그림을 그려도 '과연 이게 내 것인가?' 하는 고민이 계속 있었어요. 자신감이 없었죠, 한마디로.




-그런데도,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하진 않으셨잖아요. 막연하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다잡으셨는지도 궁금해요.

원래 작업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불안한 행위예요. 하얀 백지에 뭔가를 그려내야 되는데, 단 한 치 앞도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막막함과 불안함에 대한 자기의 방식을 찾아 나가지 않으면 어렵죠. 저는 여행을 떠나서, 환기하는 편이에요. 도움이 많이 됩니다.

요즘 친구들은,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 '나만의 스타일'이라고 하는 걸 빨리 만들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작업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이미 자신의 스타일로 귀결시키려고만 생각하다 보면 굉장히 딜레마가 빨리 올 수밖에 없어요.

자기의 리듬과 또 작업이 만나는 루트를 여러 갈래로 만들어 놓는 것. 되게 중요해요.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제가 계속 생각하는 질문이에요. 궁극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에 대한 얘기겠죠. 유근택의 작업이 세계성을 띄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 벨기에에서 개인전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게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결된 거거든요.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나를 까마득하게 모르는 사람들이 나랑 전시하겠다고요. 저도 제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이야기를 조금 더 밖으로, 더 넓은 세계로 끌고 나가는 담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유근택에게 예술은 무엇인가요?

숨? 숨 쉬고 있는 것. 내가 호흡하는 거고, 나와 만나는 장소. 그게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살아있다는 걸 환기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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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택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1988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97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


개인전

2007 동산방 화랑(서울)

2005 밀레니엄갤러리(중국,베이징)

         21+YO갤러리(일본, 동경)

2004 사비나미술관(서울)

2003 아트포럼뉴게이트 전(서울)

         동풍전, 관훈갤러리(서울)

2002 동산방화랑(서울)

         동풍전, 관훈갤러리(서울)

         인간-내면적 사유전, 도울 갤러리(서울)

2001 21+요 갤러리(일본, 동경)

2000 석남미술상 수상기념전(모란갤러리)

1999 원서 갤러리

1997 당신이 있는 이곳에서 전(문예진흥원)/ MANIF 서울 국제아트페어(예술의 전당)

         서울 판화 미술제(예술의 전당)/ 금호 미술관

1996 일상의 힘 체험이 옮겨질 때 전(관훈미술관 기획)

1994 금호갤러리

1991 관훈미술관(2, 3층)


소장처

호암아트홀, 서울

모란미술관, 서울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성곡미술관, 서울

경기도미술관, 경기도


수상

2021 이인성미술상

2010 하종현미술상

2000 석남미술상

2003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