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감별사의 이야기를 듣다

에디터 박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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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커피 감별사 이종혁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로 알려진 소믈리에. 와인을 감별하는 업무를 맡기도 한다. 와인 분야뿐만 아니라 위조지폐를 가리는 위폐 감별사. 보석 감별사. 하다못해 병아리 암수를 구별하는 감별사도 있다. 그렇다면 자주 마시는 커피에도? 역시 있다. 우리가 카페에서 접하는 바리스타와는 사뭇 다른 커피 감별사를 소개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다. 번화가라면 한걸음 건너 자리 잡은 카페를 보면 알 수 있다. 덕분에 바리스타란 직업은 제법 알려졌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란 드라마도 대중이 바리스타를 인식하는데 한몫했다. 그런데 바리스타가 내리는 에스프레소의 이면에, 커피 감별사의 숨겨진 노력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대다수가 모를 것이다.


남양주 진접읍에 자리 잡은 파젠다. 이종혁 커피 감별사의 브랜드다.


그러니 커피 감별사에 대해 아는 이도 드물겠지. 우리가 보통 카페에서 마시는, 바리스타가 내리는 커피가 원두커피다. 원두는 볶는 과정을 거친다. 볶는 과정 이전의 커피콩을 생두, 영어로는 그린 빈이라고 부른다. 이 생두의 맛과 향, 그리고 특성을 감별해 가치 있는 커피를 골라내는 직업이 바로 커피 감별사다. 


로스팅 점검 중인 이종혁 커피 감별사

생두를 볶으면 흔히 우리가 카페에서 보는 커피 색을 띈다.


오늘 소개할 이종혁 파젠다 대표가 바로 커피 감별사다. 남양주 진접읍에 자리 잡은 그의 커피 로스팅 공장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한데, 그가 출근해서 매일 빼먹지 않는 일이 있다. 커피를 로스팅하고 그라인더로 갈아서 마시는 것. 그런데 보통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방법과 매우 다르다. 이를 커핑Cupping이라 한다. 커핑은 커피 생두의 맛과 향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커피 감별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1. 커피를 갈아 분쇄한 원두 가루의 향을 맡는다.
2. 원두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3. 1분 정도 지난 후, 물에 적신 커피 향을 점검한다.
4. 4분 정도 후, 스푼을 이용해 위에 뜬 부유물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다시 커피 향을 점검한다.
5. 컵 위에 떠 있는 커피 찌꺼기를 스푼으로 걷어낸다.
6. 이제 커피를 마신다. 스푼으로 커피를 떠서 입술에 대고 "쓰읍"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하게 빨아드린다.


프로밧사의 로스팅 머신. 숫자 1번은 세계에서 첫 번째로 생산한 제품을 뜻한다.


그의 꿈은 원래 요리사였다. 중학교 시절부터 혼자 요리를 즐겼단다. 부엌을 어지럽힌 죄로 용돈을 뺏기기도 일쑤. 시간이 흘러 2005년, 이종혁 커피 감별사는 미국에서 요리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앞으로 커피 산업이 우리나라에 커질 것이라 본다. 커피를 감별하는 직업이 있다는데 한번 알아보는 것이 어떠니?"

요리를 같이 배우는 친구들에게 커피 감별사에 관해 물었다. 커피 선진국, 미국인인 그들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요리사는 세상 어디에도 넘쳐난다. 그런데 커피 감별사는 정말 없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블루오션이라는 판단이었다. 자료 조사를 하니 미국과 가까운 커피 최대 산지인 브라질이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그는 짐을 싸고 커피 감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브라질로 향했다.


파젠다 공장에 쌓인 생두들.



처음 브라질로 넘어간 그가 한 일은 커피를 수확하는 일이었다. 보통의 여느 농부처럼 새벽에 나가 커피를 직접 땄다. 그리고 오후에는 매일 같이 커핑 연습을 했다. 커피 산지 및 품종에 대한 공부로 밤늦게까지 씨름했음은 물론이다. 몇 개월이 지나자 하얀 그의 피부는 어느새 검게 탔다. 매일 같이 커핑을 하다보니 하루가 멀다고 혓바늘이 돋았다. 커피를 그리도 많이 마셔됐으니, 카페인 과다 복용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넓은 브라질 커피 농장에서 한국인은 그 혼자였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까지 커져만 갔던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바로 고추장 튜브였다. 아침 일찍 커피를 수확하고 점심시간. 당연히 그는 고추장을 음식에 뿌려 먹고 있었다. 그랬던 그의 고추장 튜브를 확 낚아챈 이가 있었다. 커핑 수업을 가르쳐주는 브라질 선생이었다.

"이렇게 음식을 자극적으로 먹다 보면 넌 100년이 지나도 커피 감별사 자격증을 따지 못할 거야."

오기가 생겼다. 뭔가 고추장을 지목당하니 우리나라를 욕되게 한 죄스러운 기분도 들었단다. 자격을 획득하겠다는 생각에 더욱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고추장을 끊지도 않았음은 물론이다.

2005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미스터 리인가요? 여기는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Special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입니다"란 전화를 받았다. 두근거리는 그의 심장 소리는 수화기 넘어 목소리까지 뒤덮을 정도로 뛰었다. "커피 감별사 자격을 획득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란 말에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아! 한국인으로는 당신이 최초입니다"란 대화가 들렸다. 자타 공인 국내 제1호 커피 감별사가 됐음을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는 확인해줬다. 커피 감별사 자격증을 준비한 지 6개월만이었다.


이종혁 커피 감별사가 딴 자격증과 (사)한국커피연합회의 감사패 및 위촉장


이종혁 커피 감별사가 6개월 만에 땄다고 하니 쉬운 자격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커피 감별사 자격증을 따기는 녹록지 않다. 몇년을 준비해도 통과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시험은 하루도 아닌 3일에 걸쳐 이뤄진다, 과목도 20개 이상이다. 커피에 대한 이론은 당연하며, 미각, 촉각, 후각 등의 감각도 중요하다. 커피 감별 능력을 테스트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커피에 대한 기준점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준점이란, 커피 맛에 대한 본인만의 객관적 기준이다. 이종혁 커피 감별사는 이를 위해 다양한 커피를 즐겨보라고 권한다. 본인에게 맛있고 유명한 커피만 마시면 절대 커피에 대한 기준점을 잡을 수 없다. 되려 본인 취향에 맞지 않는 커피부터, 심지어 커피믹스까지 다양한 커피 맛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히고 기억해야 커피 감별에 도움이 된다. 이에 앞서 커피를 좋아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종혁 커피 감별사가 브라질에서 획득한 커피 감별사 자격은 정확히 말하면 SCAA Cupping Judge다. 동일하진 않지만 비슷한 자격 응시가 국내에서도 가능하다. 이를 큐그레이더(Q-Grader) 자격이라고 한다. SCAA에서 독립한 CQI(Coffee Quality Insistute)가 주관하는데, 이들의 자격을 위탁받아 시험을 시행하는 기관이 우리나라에도 여럿 생겼다. 그런데도 아직 커피 감별사는 그들만의 리그다. 커피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에겐 여전히 매우 생소한 직업이란 말이다.  


카페 파젠다의 블렌딩 커피

포장되고 있는 파젠다 커피


그가 커피 감별사 자격을 따고 나서 국내로 들어오니 제법 유수의 국내 커피 기업들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파젠다란 본인의 커피 브랜드를 만들었다. 하루도 쉼 없이 커피를 볶고, 최상의 커피 블렌딩을 위해 커핑을 지속한다. 이렇게 커피 업계의 최전선에서 고객들과 만나는 이유가 있다. 커피 감별사란 직업을 조금씩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오늘도 그는 거래처 사람을 만나며 이렇게 말을 한다.
"커피 감별사 이종혁 파젠다 대표입니다."

환한 미소의 이종혁 커피 감별사. 그의 미소에서 커피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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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현성
사진 정희찬 박현성
편집 박찬홍, 정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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