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메뉴가 아닌 시간을 파는 카페

에디터 박현성
2018-11-23

해외 카페 | 치페르블라트 Ziferblat


커피 공짜, 비스킷 공짜, 토스트 역시 공짜. 러시아의 한 카페에서 지불하는 건 오로지 시간에 대한 값이다. 그야말로 ‘시간이 돈’이다. 시간만큼 돈을 내니 손님은 오래 머문다고 주인 눈치 볼 필요 없고, 주인 역시 오래 머무는 손님을 걱정할 필요 없다.

 
몇 년 전, 뉴욕 한인 타운 맥도날드에서 한국인 노인을 쫓아내 화제가 됐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계속 자리를 차지하던 한국 노인과 이 때문에 손님을 받지 못하는 미국 뉴욕 퀸즈 맥도날드의 갈등에서 생긴 문제였다.
 

치페르블라트 러시아 본점 모습


카페나 음식점 입장에서 오래 머무는 손님으로 골머리 쌓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한적한 시각인 평일 오전 10시, 대학가 부근 작은 카페는 6~7개의 테이블을 차지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테이블 위로 노트북, A4 용지 등이 가득하다.

얼핏 장사 좀 된다는 생각이 들 법하나,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과제, 시험 준비에 몇 시간을 죽치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점주 마음은 편치만은 않을 터. 오죽하면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카페에서 죽치는 손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점주들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 공짜로 줄 테니 분당 50원 내라
 
“손님 죄송하지만, 주말에는 2시간 이상 계실 수 없어요.”

연남동 번화가의 한 카페는 손님이 몰리는 주말 테이블마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정했다. ‘오죽했으면’ 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한다’며 볼멘 소리하는 사람도 적잖다. 이런 내규를 만든 점주 역시 고민이 많았다.

치페르블라트의 오너, 이반 마린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일까? 해외에서는 메뉴가 아닌 시간을 파는 카페가 등장해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 2011년 러시아 출신 이반 마린은 대학 시절 지인에게 시간만큼 돈을 받고 방을 빌려줬던 경험을 살려 모스크바에 카페를 열었다.

카페의 콘셉트를 따라 시계는 사방에 널려있다

 
모든 메뉴가 무료고 심지어 외부 음식(술은 제외) 반입도 가능한 이 카페의 이름은 ‘치페르블라트(Ziferblat)'. 러시아어에서 차용한 독일어로 시계나 시계 눈금판이란 뜻으로, ‘분당 요금 지불’이 콘셉트다. 모스크바 푸슈킨스키야점 이용 요금은 현재 분당 3루블(한화 약 50원). 한 시간 정도 머물 경우 손님은 약 3,000원 정도 지불하면 카페의 모든 메뉴를 누릴 수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손님은 먼저 탁상시계를 하나 건네받는다.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게 하는 탁상시계는 바로 카페 이용 요금을 계산하는 도구. 정밀한 시간 계산이 가능한 디지털시계가 범람하는 요즘, 아날로그시계는 시간을 거슬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치페르블라트만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커피, 토스트, 차, 비스킷 등이 항시 준비돼 있고 주방 시설을 갖춰 다른 손님에게 폐를 끼칠 정도가 아니면 본인이 먹고 싶은 요리를 직접 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 유럽 카페는 와이파이 사용료를 받지만 이곳은 이것도 무료다. 즉 시간 외 모든 것이 공짜인 것이다.

시간마저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일종의 자원봉사 개념인데, 예를 들어 손님이 2시간 정도 치페르블라트의 업무를 도와준다면 그 시간만큼 공짜로 머물 수 있다.

한 청년의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한 치페르블라트는 현재 본점이 있는 러시아를 비롯해, 영국, 미국, 우크라이나, 몽골까지 영역(5개국 16개 지점)을 넓혔다. 치페르블라트가 제시한 콘셉트인 ‘시간을 판다’라는 새로운 카페 트렌드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방증이다.

INFORMATION
+7 (965) 447-62-99
Tverskaya St, 12, стр. 1, Moskva, Russia(러시아 본점)



에디터 박현성
star@gongshall.com
사진 치페르블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