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양화대교 프리퀄 <화이트브릭스길>

에디터 진성훈
2019-03-06

합정 | 시간의 블렌딩




합정동 뒷골목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치 15년 전 홍대처럼, 개성있는 가게와 카페가 하나 둘 들어서는 흐름이 심상치 않다. 오래된 빨간 벽돌로 지어진 주거지 사이로 보이는 흰 색 벽을 찾으면 절반은 성공이다. 바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흥미진진한 가게가 모인 곳, 합정동의 화이트브릭스길이다.


합정동은 2012년 주상 복합 건물 메세나폴리스가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무인양품, 롯데시네마 등 240개에 달하는 상업 공간이 동네에 숨을 불어넣은 것이다. 지하철 2, 6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편의성 역시 이러한 흐름에 힘을 더했다. 싱글족을 포함한 젊은층 유동 인구가 몰리며 소위 ‘범홍대권’에 합정동이 편입된지도 벌써 7년차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일대가 과거부터 젊은 부촌의 이미지를 지녔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임대려 상승 압박으로부터 안전한 입지 덕에 노포, 그러니까 전통있는 맛집과 가게가 곳곳에 있다는 인식이 더 강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화정’이다. 양화정은 오래된 가게가 으레 그렇듯 OO정, OO옥 계열의 이름을 공유하며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숯불갈비 전문 식당이다. 100석 이상의 넓은 규모임에도 이곳이 언제나 만석인 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 때문이 아니라 가족, 회사 단위로 지역 주민들이 자주 방문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함께 쌓인 맛과 분위기는 합정동의 숨은 매력이다.


조금 더 파고들어가 양화정의 앞글자이자 양화대교의 어원인 나루터 ‘양화진’을 따라가다보면 합정동 역사의 시간축은 약 100년 앞으로 당겨진다. 조선 시대에 양화진은 서울에서 양천(陽川)을 지나 강화로 가는 주요 간선 도로에 위치했던 교통의 요지였다. 더불어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고 목잘라 죽인 것도 오늘날의 ‘절두산’ 아래 양화 나루터 근처다.




아이러니한 이야기도 있다. 미국 AP통신사의 임시특파원이었던 테일러는 1919년 3·1운동 직전 부인의 아들 출산을 위해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가, 간호사들이 침상 밑에 숨겨두었던 독립선언서를 발견한 뒤 관련 기사를 작성해 국외에 알렸다. 테일러는 1948년 사망한 후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대로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원에 안장됐다.


이러한 양화진의 역사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합정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합정동은 갑오경장 문서에도 ‘합정리계’로 기록되었는데, 당시 양화나루 부근의 마을로서 그 일대를 보통 ‘양화도’로 호칭했다. 양화도 지역에는 ‘조개우물’로 불리는 우물이 있어 ‘합정동’(蛤井洞)이라는 이름이 붙은 뒤에 합정(合井)으로 변하여 전해 오고 있다.
시간을 다시 현재로 돌리면, 메세나폴리스 맞은편 합정동 골목 일대에는 마치 이러한 역사와 단절된 듯한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합정역에서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도로 뒤편의 오래된 주거지 사이사이로 카페를 포함한 상업공간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번잡하지 않은 지역에 자신만의 분위기를 담아내 지역 주민과 주변 직장인이 단골로 찾는 공간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북카페 ‘타인, 나 자신’이 살롱을 재해석한 공간을 꾸며 주민들을 모으는 모습이나, ‘앤티크커피’가 다양한 시그니처 커피와 앤티크 가구로 근처 직장인에게 사랑받는 등의 흐름에는 비슷한 맥락이 있다. 과거의 자산에서 콘셉트를 끌어와,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동네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 ‘양화’의 과거는 단절되지 않았다.

\


최근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동네의 혈관이다. 그러니 카페가 들어선다는 건 피가 돌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합정동에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공간이 모이고 있다. 양화의 역사 위에 앞으로 어떤 새로운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을지가 기대되는 이유다. 앤티크와 모던함이 공존하는 합정동의 시간은 기존과 다른 결로 쌓이는 중이다.


에디터, 사진 진성훈
sh.jin@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