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부자가 되고 싶어 <퇴근길 여행 한 컵>

에디터 진성훈
2018-10-25

후암동 | THE MONOLOGUE HOUSE


"부자가 되고 싶어. 예쁜 짓을 해서 네 사랑을 벌고 싶어. 내 가슴은 텅 비었어(Zion.T, <나쁜 놈들> 중에서)" 사랑노래가 아니라 직장생활의 애환을 담은 노래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느라 나를 놓치는 생활 말이다. 텅 빈 가슴을 채우는데는 여행만한 게 없다. 그렇다고 퇴사나 휴가가 답은 아닌 것 같은데. 퇴근 후에 다른 도시를 여행하면 어떨까. 이 글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사회초년생의 여행기이자 <퇴근길 여행 한 컵> 시리즈의 2번째 도시 탐험기다

*나를 증명하는 시에서 이어집니다.



직업을 막론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구독하는 잡지가 있다. 시사, 비즈니스, 문화, 디자인 4가지의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면서 동시에 감각적인 편집능력까지 갖춘 미디어 브랜드, 모노클(Monocle)이다. 국내에는 2018년 3월 한국 특집호를 통해 알려졌지만, 매거진 B와 PUBLY는 각각 잡지와 디지털 리포트를 발간해가며 심층분석할 정도로 배울점이 많다. '잘' 살아남고 싶은 사람을 위한 잡지다.


가오픈 기간이 막 끝난 후암동의 THE MONOLOGUE HOUSE를 찾아간 것도 모노클 때문이었다. 문을 열면 숍으로 운영되고 있는 2층에 모노클 잡지가 눈에 띈다. 월간지도 있지만, 특정 도시를 소개하는 시티 가이드 이슈들도 벽 한칸을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도시 중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잡는 법)을 먼저 했던 곳이 있을까. 모노클의 슬로건은 '세상에 눈과 귀를 열어놓을 것(keeping an eye and an ear on the world)'이다. 이렇게 모노클이 가득한 공간이라면 나의 다음 여행지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층 숍의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모노클 시티 가이드 이슈


우선 이 공간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는 믿기지 않게도 루이스 폴센 조명이 달려 있다. 개인 공간에 이런 고가의 가구라니. 그 옆에는 국내 수제 원목가구 브랜드 카레클린트의 의자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공간의 분위기는 조명이 첫번째, 가구의 소재와 질감이 두번째로 결정한다. 아늑한 분위기와 양질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선택이다.




2층 숍을 보고 나니 1층의 카페는 어떻게 꾸몄을지 기대됐다. 복층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말차라떼를 주문할 때부터 카운터의 Hay 가위가 눈에 띈다. 홀에 나란히 놓인 원목 테이블에는 뜻밖에 서랍이 달려있고, 안에는 메모지와 연필이 구비되어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여행지를 찾는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디테일이다.


이렇게 세련된 공간을 디자인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해보고 여행을 많이 다녔던 김민구 대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여행지 선정에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 뉴욕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다는 말이 귀에 걸렸다. 화려함과 가난이 공존하는 것이 뉴욕의 풍경. 그 모습이 마치 PR 에이전시 대표로서 유명 브랜드들과 일하며 경제적으로 윤택해졌지만, 정작 작가가 되겠다는 어릴적 꿈을 방치한 자아 같았다며. 그 극명한 대조를 보며 느꼈다고. 내 삶에서 타인의 인정이 1순위인 시절은 누구나 겪는 걸까.

“살려주세요.”

오전 10시, 사내 메신저로 나의 실수를 조용히 알려주려는 선배에게 선수를 쳤다. 또 죄송하다고 말하기엔 염치가 없어서. 큰 잘못은 아니었지만 번번이 알려주는 쪽도 지겹겠지 싶어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젠 알아서 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스스로에게 윽박을 질렀다. 첫 직장, 첫 인턴 생활은 그렇게 자괴감과 조마조마함의 연속이었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은 커녕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조차 긴가민가 했다. 자꾸 눈치를 봤고, 어느새 숙제하듯 일하고 있었다. 일의 중요성보다 팀장의 스타일을 먼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버티기 어려웠다. 퇴사할 무렵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시키면 중간 이상은 한다’는 팀장의 묘한 칭찬을 곱씹었다. 잠재력이 있다는 말로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는 평가로 들렸다. 그냥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확하게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뉴욕이 그런 도시일까. 공유 오피스 WeWork의 공동창립자 미겔 매켈비는 자신의 사업 근거지인 뉴욕을 성공하기 힘든 도시로 정의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밀어붙이는 허슬(hustle) 정신이 유독 강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화려함의 정점과 다인종(다문화)이 일상에 공존하는 뉴욕에서는 강한 개성만이 살아남는다. 이 대전제 아래에선 기업가치 350억 달러를 바라보는 스타트업이나, 5평짜리 개인가게나 모두 같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내 개성을 가장 비싸게 팔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에 뉴욕보다 적격인 도시는 없는 것 같다. 타인의 인정보다 자신의 개성을 고민하고, 그 결과물은 고스란히 새로운 공간과 비즈니스로 이어진다.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을 훔치러 갈 수 있을까. 어쨌든 '살려주세요' 보다는 '살아남겠다'가 더 낫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뉴욕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다음편에 계속).


INFORMATION

서울 용산구 두텁바위로 111

www.instagram.com/themonologuehouse




에디터, 사진 진성훈
sh.jin@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