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연남동 군침도는 7가지 면요리의 향연

에디터 박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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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 누들맵







목, 금. 휴가가 생긴 수요일 밤. 마음 편히 TV 전원 버튼을 눌렀다. 꽤 유명한 미식 프로그램이 흘러나온다. 주제는 연남동 어딘가 면 요리 집. “후르륵, 후르르르륵” 고막에 우렁찬 면치기(면을 끊지 않고 연속으로 먹는 것) 소리가 강타한다. 배가 고파졌다.

선반에 고이 모신 라면 하나를 꺼냈다. 물은 양은냄비에 딱 500㎖만 받았다. 냉장고를 뒤져, 계란을 꺼내고 파도 하나 쏭쏭 썰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괜히 들여다봤다. 휴가라고 제법 떠들었건만. 만나자는 응답 하나 없네. 그래 다들 바쁘겠지.

엎치락뒤치락 아우성치는 냄비 뚜껑과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가 적막을 깬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다. 먹기 싫어진다. 팔팔 끓었던 물을 싱크대 배수구로 부었다. 늦은 밤, 괜히 애꿎은 싱크대를 달구고 씁쓸한 마음만 남았다.

조용히 거실 불을 끄고 침대에 몸을 던진 순간 ‘참! 내일부터 휴가지’. 내려갔던 입꼬리가 자연스레 승천한다. 아까 봤던 연남동 면 요릿집을 재빨리 초록창에 검색해본다. 수 백개의 가게가 뜬다. 그중 7가지 종류별 면 요리를 골랐다.

목요일 오전 10시,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와, 오른편 골목을 쭉 걷는다. 몇 블록 계속 더 직진하면 연남동이다. 연희동의 남쪽이라 연남동인 이곳은 본디 화교들의 중식당과 푸짐하고 싼 기사식당만 즐비했다. 이젠 골목마다 카페고 레스토랑이다. 한식, 중식, 일식, 동남아 등 분야도 다양하다. 덕분에 이른 시간이지만 거리는 총총걸음 밥집을 찾는 하이에나들로 그득하다.
 


아침 시간이라 조금은 가벼운 면 요리가 당겼다. 그래서 찾은 곳이 ‘미소국수’다. 한 6평 될까 싶은 작은 공간에 테이블이 6~7개쯤 자리 잡았다. 내부는 우리가 자주 볼법한 보통의 분식집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한쪽 벽면이 연예인들의 사인으로 가득 찼다. '맛있겠네' 나도 모르게 되뇐다.

십 여분을 기다렸더니 잔치 국수가 하나 나왔다. 먼저 국수 그릇을 두 손으로 경건히 모시고 국물을 목구멍으로 넘겨본다. 고명에 올라간 양념의 강렬한 감칠맛이 혀끝에 느껴진다. 이어 코끝을 감싸는 익숙한 멸칫국물 맛이 마냥 푸근하다. 이젠 면을 먹을 차례다.

젓가락을 들고 고이 묶인 소면 타래를 힘차게 풀어헤친다. 그리고 입안 가득 욱여넣는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쉬면 젓가락에 나풀거리던 면발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웠다. 모든 국수는 보통, 곱빼기, 울트라로 크기 선택이 가능하단다. 크기별 가격은 같다.


INFORMATION 

서울 마포구 동교로 27길 41

02-326-5403





12시. 보통 사이즈 국수를 먹어서 그런가. 난 아직 배고프다. 때마침 저 멀리 ‘댕구우동’이란 간판. 그리고 조그마하게 ‘사누끼우동 대사관’이란 문구가 보인다. 약간 모자란 배를 채우기엔 화려하지 않고 묵묵한 우동이 좋아 보였다.
연륜 묻어나는 주인장이 물 한잔 내온다. 자연스레 가케우동을 하나 시키며 ‘사누키우동 대사관’에 관해 물었다. 일본 사누키우동의 본고장인 가가와현에서 ‘사누키우동 한국대사관’으로 지정받았단다. 가슴은 솟구치는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발효시켜 만든 수타면은 쫀쫀한 근육을 품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동시에 느껴지는 쫄깃함. 면을 들고 흔들었더니 느껴지는 탄성. 그런데 딱딱하진 않았다. ‘우동은 국물이 끝내줘야’ 한다지만 사실 일본식 우동의 생명은 면이다. 이런 근육질의 면을 만들기 위해 매일 쉼 없는 반죽과 24시간 숙성 작업을 거친단다.

찾아가는 길: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6길 46
문의 전화: 02-333-9244
메뉴: 가케우동, 냉우동, 가마타마우동.


국물 가득 면 요리만 먹었더니 볶음면이 생각났다. 이국적이면 더 좋겠다. 오후 3시 아슬아슬하게 브레이크 타임 전, 인도네시아 음식점 릴린에 당당히 입성했다.
시원하게 걸어둔 대나무, 가게 곳곳을 누비는 가짜 도마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직접 구해온 듯한 소품들. 연남동이 아니라 작은 인도네시아에 온 착각에 빠졌다. 매장 내부는 상당히 작은 편이지만 테이블을 널찍이 둬 제법 여유로웠다. 자리를 잡고 미고랭을 주문했다.
릴린의 김성민 셰프는 그랜드하얏트호텔 등에서 양식과 태국, 베트남 음식을 고루 수련한 베테랑이다.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게끔 레시피 개발에 꽤 오랜 기간 매달렸단다. 그 이유였을까? 여타 동남아 음식점의 미고랭과 비교해 기름기가 적다. 게다가 달근한 인도네시아의 현지 미고랭 느낌을 줄였다. 에그 누들 특유의 꼬들꼬들 씹히는 식감은 마냥 재밌다. 덕분에 면을 집는 나의 포크는 쉼없이 춤췄다.

찾아가는 길: 서울 마포구 공교로34길 17
문의 전화: 010-6225-6036
메뉴: 미고랭, 나시고랭, 바나나튀김.
 


입안에 남은 이국적 정취를 더욱 극대화하고 싶었다. 오후 6시, 태국식 쌀국수 전문점 ‘소이연남’으로 향했다. 수요일 미식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유명해진 이곳은 굳이 ‘말해 뭐해, 그냥 맛있어’로 정의할 수 있다.
평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기자로 인산인해였다. 40여 분을 기다려 들어가 소고기국수를 하나 시켰다. 취향에 맞게 면 굵기를 선택할 수 있는데, 얇은 센미와 더 두껍고 납작한 센렉이 있었다.
국수를 받아들었다. 점심으로 먹은 릴린의 미고랭과 비교해 더욱 깊고 이국적인 향이 코로 침투한다. 두려움을 뒤로하고 국물 한 숟갈 떠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진한 소고기 국 맛에 약간의 향신료 향이 가미된 느낌. '어럽쇼' 전혀 거부감 없었다. 이젠 면을 후루륵 넘겨본다. 쫄깃함은 덜하지만 쉽게 끊어 먹는 재미가 있다. 아껴둔 고기를 집었다. 소고기 아롱사태다. 숭덩 씹히는 것이 제법 뭉근히 끓인 고기다. 아롱사태의 힘줄을 제거하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다. 고기가 쉬이 바스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먹다 보니 손이 올라가고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여기 소주 하나요.”

찾아가는 길: 서울 마포구 동교로 267
문의 전화: 02-323-5130
메뉴: 소고기국수, 솜땀, 소이뽀삐아.

금요일 오전 11시, 다시 연남동으로 향했다. 하루 만에 연남동 면 요리집 7곳, 면식수행. 가당키나 한 소린가. 내 침 속, 아밀라아제와 위장의 소화효소 수준으로는 무리다.



평양냉면의 신흥강자로 떠오르는 련남면옥에 도착했다. 사실 평양냉면은 인정받기 어려운 음식이다. 각자의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마니아들이 많은 것이 이유다. 오죽하면 면스플레인이란 말까지 생겨났겠나. 오픈 1년 만에 이 까다로운 평양냉면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세 얻다니. 련남면옥, 누구냐 너!
8개 테이블. 규모는 매우 협소하다. 11시 30분, 입장해 냉면 한 그릇 시켰더니 그새 만석일 정도다. 협소하지만 그만큼 이곳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잠시 기다리니 무절임과 계란지단 그리고 소고기가 제법 수북한 냉면이 나왔다. 재밌게도 이 집은 식초나 겨자가 따로 없다. 평양냉면에 자연스레 붙는 논쟁거리를 자체검열한 셈이다.
대신 조개육수가 딸려 나온다. 종업원은 “냉면 드시면서 조금씩 넣어 드세요. 천연 조개 육수라 감칠맛을 더해줍니다”라고 했다. 쉽게 잘리는 면, 제법 쩡한 육수는 보통의 평양냉면과 견주어 비슷했다. 그런데 조금씩 부을 때마다 맛을 더하는 조개육수가 재밌다. 손님에게 맛 취향을 선택할 권리를 가게는 넘긴 셈이다.
그래서 련남면옥 인기의 비결. 제 평가는요. 아마도 조!개!육!수!

찾아가는 길: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90-4
문의 전화: 02-332-2822
메뉴: 평양냉면(물, 비빔), 업진곰면, 엄진곰탕.
 


오후 2시 30분. 이젠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오전에 냉면 한 그릇 했더니 이젠 좀 따스한 국물 면 요리가 먹고 싶다. 문득 떠오르는 베트남 쌀국수집. 연남동 동진시장 부근, 베트남 여성 얼굴 간판으로 유명한 Ahn이다.
베트남계 캐나다인 Kevin과 친구 Jason이 합심해 가게를 내고, 레시피는 각자의 그리운 어머니 음식을 떠올리며 만들었단다. 연남동의 대체적인 매장 트렌드인 협소함. 이곳도 매한가지다. 다만 테이블 개수는 많지 않아 마냥 좁게 느껴지진 않는다.
쌀국수를 주문하니 바구니 하나를 주는데 허브가 수북하다. 고수는 물론, 타이 바질, 타이 민트, 쿨란트로까지 보통의 베트남 쌀국수집에서는 만나기 힘든 허브들이다. 일단 감동이다. 물론 더 달라고 해도 문제없다.
다양한 허브를 쌀국수에 부었더니 정말 풍부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반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쌀국수에 넣지 않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푹 고운 고기 육수에 느억맘 소스를 오묘하게 가미한 깊은 국물은 매력 만점. 잘근 씹히는 쌀국수 면과 찰떡궁합이었다. 벌써 2호점까지 냈다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찾아가는 길: 서울 마포구 동교로 262-13
문의 전화: 070-4205-2822
메뉴: 쌀국수, 베트남라이스, 파파야샐러드.


어김없이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7면, 면식수행의 종착점은 조금은 뻔한 면 요리, 짬뽕이다. 사실 연희동과 맞닿은 연남동은 맛있는 중화요릿집이 그득하다. 그 중, 내가 찾아간 산왕반점은 가성비로 유명하다. 제법 이름난 중식당에선 최소 8천 원은 줘야 할 짬뽕을 여기서는 5천 원이면 손에 쥔다. 그럼 음식 질이 떨어지지 않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서둘러 나온 짬뽕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니, 빨간 국물 위로 제법 그득한 홍합과 함께 오징어가 서로 뒤치락거린다. 찰기 가득한 면도 매력이다. 퍼졌다는 느낌 하나 없다. 한가득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씹으면 면에서 느껴지는 졸깃함이 상당하다.
가게가 조용하니 냅다 소주도 한 병 시켰다. 한 손으로는 젓가락질. 다른 손으로 살며시 소주잔에 술을 채운다. 저녁 7시. 이렇게 휴가가 끝이 난다. 7면, 면식수행도 끝났다. 이틀간 입안 터져라 먹어댔으니 제법 늘어났을 몸무게 걱정도 났지만, 뭐 어떠하리. 즐겼으면 된 것을.

찾아가는 길: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29안길 19-5
문의 전화: 02-324-0305
메뉴: 짬뽕, 오향장육, 멘보샤.


에디터 박현성
사진 박현성
star@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