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이별은 예정됐지만 기억 속에 영원할

에디터 박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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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탕




5호선 애호개역 부근, 아현동 613-11.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이 있다. 언젠가 재개발로 허물어질 행화탕은 시한부 인생을 산다. 대중에게 즐거운 기억과 의미를 남길 수 있다면 여한 없단다. 언젠가 지도에서 사라지더라도.


행화탕은 제법 이름난 목욕탕이었다. 1958년에 문을 열었고 50년 넘게 아현동 주민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닦아줬다. 그리고 2007년 문을 닫았다. 현재까지 목욕탕으로 존재했다면 서울 시내에선 최고참이 될 뻔했다.


10년 이상 방치됐던 행화탕을 보수하는 장면. 사진 촬영: Chad Park(채드박), 사진 제공: 축제행성


문을 닫은 후, 주인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방치됐다.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건물을 다시 보수하기도 힘들었다. 내부에는 곰팡이로 그득해 쾌쾌한 내음 가득했고, 담벼락에는 덩굴식물만이 자라 사람 인적이 없다는 확연한 표시를 더했다.

그랬던 행화탕에서 이젠 커피를 판다. 그뿐인가. 열정 가득한 작가들이 전시회를 연다. 주민들이 모여서 살구청도 담근다. 꽤 주목받는 음악가들의 쇼케이스도 벌어진다. 인적 없던 흉물 같았던 행화탕이 이젠 사람들 모이는 복합문화공간이 됐다.


행화탕은 이제 다양한 사람들의 아지트가 됐다


다 쓰러져가던 목욕탕에서 이젠 커피도 판다


행화탕에 심폐소생술을 행한 이들이 바로 서상혁, 주왕택 '축제행성(축제·공연 기획회사)' 공동대표다. 사실 이들은 행화탕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아현동에 연고도 없었다. 복합문화공간을 기획했던 그들은 저렴한 공간을 찾아 헤맸다.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찾았고, 행화탕을 발견했다.


예술로 목욕하는 날 행사. 사진 촬영: 채드박(Chad Park), 사진 제공: 축제행성


행화탕을 처음 본 서상혁 공동대표의 첫인상은 안타까움이었단다. 재개발로 묶여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지만, 관리받지 못하고 방치된 행화탕의 모습 때문이었다. 행화탕이 마지막 가는 길을 예술로 아름답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단다.

2016년 5월 15일, 폭우로 뚝뚝 빗방울 소리가 그대로 울려 퍼지는 행화탕 내부가 왁자지껄했다. 옛 동네 목욕탕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는 개관 소식에 20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다.

2016년 5월 15일. 행화탕 개관 행사. 사진 촬영: 채드박(Chad Park), 사진 제공: 축제행성


남탕과 여탕으로 나눈 목욕 공간은 하나로 합쳐져 검은 먹물 바다 위에 하얀 연잎을 띄운 작가의 놀이터가 됐다. 벽돌 부재가 널브러진 보일러실에선 영상물이 흘러나왔다. 바로 옆 창고는 연극배우들의 공연 무대로 탈바꿈했다.

현재도 행화탕은 신진 아티스트 기획전, 작곡가의 쇼케이스, 스페인어 강좌, 도서 기획전 등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를 진행한다. 특히 행화탕의 슬로건이자 매달 열리는 '예술로 목욕하는 날' 행사는 결혼, 환갑, 가족 등의 우리들 삶에 익숙한 주제로 진행해 많은 호응을 받는다.


예술로 목욕하는 날: 환갑잔치 목욕. 사진 촬영: 채드박(Chad Park), 사진 제공: 축제행성


예술로 목욕하는 날: 환갑잔치 목욕. 사진 촬영: 채드박(Chad Park), 사진 제공: 축제행성


예술 공간으로 거듭난 행화탕이지만 목욕탕의 순기능인 사랑방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는 이웃 주민 김철영 씨의 환갑을 맞아 예술가들이 그의 삶을 조명한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6월에는 살구청 담기 행사를 통해 동네 주민들과 화합을 도모했다. 예상보다 많은 주민의 신청에 살구를 더 주문해야 했단다.


행화탕 살구청 담그는 날. 사진 출처: 행화탕 페이스북, 자료 제공: 축제행성


행화탕에서 진행한 다양한 예술 행사들. 사진 출처: 행화탕 페이스북, 자료 제공: 축제행성


행화탕은 현재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재개발 지역이다 보니 철거 일정이 정해지면 언제든 건물을 비워야 한다. 어짜피 이별이 예고된 만큼 행화탕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매듭짓는 것도 방법이다.

"행화탕은 죽음을 목전에 남겨둔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죽음이 행화탕을 뒤덮더라도 행화탕을 방문한 사람들의 기억, 행화탕에서 창조된 창작물들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으로 행화탕의 역할은 충실했다고 본다." 서상혁 공동대표는 이렇게 인터뷰를 끝맺었다.



에디터 박현성
star@gongshall.com
사진 정희찬
chance@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