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그가 연남동 땅을 밟은 이유는?

에디터 박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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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윤성용레스토랑 오너 셰프



당신의 이름값은 얼마인가?
대개 유명인들이 갖는 평판과 가치를 두고
이름값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름값’ 좀 하라고...
그렇다면 무언가를 함에 있어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감? 책임감?
여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이 있다.
그 이름에 담긴 이야기가 듣고 싶어 연남동으로 향했다


연남동은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도락 천국이다. 연트럴파크를 중심으로 태국, 이탈리아, 멕시코 등 각 나라 대표 음식을 내건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이름도 각국각색이어서 연남동 3년이면 3개 국어 정도는 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윤성용 레스토랑 전경


사람들로 붐비는 메인 스트리트를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자 차츰 인적이 드물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기자기한 공방과 소박하게 꾸며놓은 카페가 한층 여유로움을 더할 때쯤 커다란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윤성용레스토랑’. 붉은 벽돌에 흰 페인트를 칠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다른 레스토랑들과 달리 어느 나라 음식인지, 어떤 메뉴인지 이름만 봐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몹쓸 호기심이 참지 못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윤성용이 뭡니까?’

이탈리아 볼로냐의 모습. 윤성용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매우 닮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 벽돌을 포인트로 한 인테리어가 포근하게 감싼다. 이탈리아의 붉은 도시 볼로냐를 연상시켰다. 그렇다. ‘윤성용레스토랑’은 윤성용 오너 셰프가 자신의 이름 걸고 하는 이탈리안 음식 전문점이다. 이제 갓 1년 된 연남동 새댁이지만 어느새 입소문이 났는지 점심시간이 되자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여러 맛객을 사로잡은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시그니처 메뉴인 ‘둥지샐러드’와 ‘감베로니’를 주문했다.


둥지샐러드, 감베로니 (사진 제공: 윤성용 레스토랑)


‘이거 먹어도 되나?’ 둥지샐러드는 모양부터 심상치 않았다. 식물로 만든 조형작품 같았다. 얇게 썬 닭다리살과 감자를 튀겨 둥지 모양의 틀을 잡고 그 위에 샐러드를 올려 라다치오로 감쌌다. SNS 상에서 난리가 난 그 비주얼이다. 그 맛은 어떨지 포크와 나이프로 둥지를 부쉈다. 꽃이 만개하듯 펼쳐진다. 만다린드레싱의 새콤달콤한 향이 싱싱한 채소, 바삭한 치킨과 만나 입맛을 당겼다.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윤성용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들


'감베로니'는 싱싱한 대하를 살뜰하게 넣어 루꼴라와 비스큐버터(게 등 갑각류와 버터 등을 넣고 끓인 소스)를 같이 볶아낸다. 그릇을 받아들면 그윽한 새우 향기에 나도 모르게 취한다. 해산물을 좋아한다면 꼭 먹어봐야 한다.

윤성용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를 접하고 나니 다른 메뉴들도 궁금해졌다. 정통 이탈리안이라고 하기엔 묘한 매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간판에서 시작된 궁금증은 요리에서 더욱 증폭됐다. ‘윤성용, 당신은 누구십니까?’


윤성용 셰프가 연남동에 자리 잡기까지의 여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윤성용 셰프와의 긴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머리가 아파왔다. 이 긴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시간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성용 셰프의 고교 시절 꿈은 국내 최정상 댄서였다고 한다. ‘나나스쿨’의 초기 멤버이자 당대 최고 인기그룹 ‘젝스키스’의 백업 댄서로 활동했다고 하니, 춤빨 좀 날렸던 사람이라면 '아!'하고 혼잣말을 되뇔 것이다. 지금의 짧고 깔끔한 머리 스타일을 보고 있노라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샛노란 머리칼에 펑퍼짐한 힙합바지를 끌고 길거리 댄스 배틀을 벌이기도 일쑤였단다.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라 음대에까지 진학했다고 하니 어찌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활짝 웃음 짓는 윤성용 오너 셰프


춤생춤사였던 그의 인생은 군복무를 하며 바뀌었다. 맞선임이 조리병이라 요리를 배울 기회가 생긴 것이다. 팍팍한 군생활에 요리가 활력소가 될 줄이야. 하면 할수록 재미가 붙고 실력도 늘었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가족에게 요리를 선보였는데, 칭찬 일색이었다. 진지하게 요리사를 해보라는 권유까지 받았다.

사실 짧지 않은 군생활은 전문 댄서에게는 큰 걸림돌이었다. 제대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춤을 계속 출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요리였다.

윤성용 레스토랑 전경. 붉은 벽돌 사이로 그의 지난 삶이 걸려 있다.


군 제대 후 바로 찾아 간 곳은 청담동의 퓨전 중식 레스토랑 '시안'이었다. 200평이 넘는 대규모 레스토랑에서 ‘주방 보조’로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극명했다. 밥 먹듯이 욕을 먹었다. ‘그릇을 깨뜨렸다’, ‘손이 느리다’, 하다못해 ‘밥도 늦게 먹는다’고 주방 선배들은 그를 닭 잡듯 휘어잡았다. 요리 비전공자란 이유도 한몫했다.


이탈리아 음식에 애착을 가진 그는 이탈리아까지 건너가 요리를 배웠다


자연스레 이를 악물었다. 백업 댄서로 이골이 난 그에게 주방 보조의 설움은 승부욕을 자극할 뿐이었다. ‘언젠가 내 이름을 걸고 요리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아니, 백업 댄서로 활동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남모를 노력으로 살아온 날들이 그의 ‘명성욕’을 자극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는가.

윤성용 셰프의 피나는 노력 끝에 데일리 트루어워즈 최고의 레스토랑에 선정되기도 했다.

 
쓰레기통을 뒤져 남은 음식들을 모았다. 모두가 퇴근하고 나면 주방에 홀로 남아 굽고 튀기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2년을 참고 버텼다. 당시 시안의 총괄 셰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은 상상도 못할 짧은 시간에 ‘넘버2’가 되었다.

그리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윤성용 셰프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일식조리사협회 회장을 역임한 양승남 셰프의 눈에 띈 것이다. 사랑에 국경은 없다고 했던가. 요리에도 그러했다. 일식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중식과는 칼 쓰는 법부터 달랐지만 늘어가는 실력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렇게 몇 해가 훌쩍 지나고 레시피 컨설팅까지 맡을 만큼 일취월장했다.


윤성용레스토랑 벽면에서 그의 여정을 담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선을 넘는 것은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훨씬 쉬웠다. 이탈리안 요리는 물론 베트남 음식까지 춤추듯 국경을 넘나들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실력을 키워나갔고 무서운 신예로 업계에 소문까지 났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헛헛함이 가시질 않았다. 모든 박수갈채는 총괄 셰프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 석 자로 손님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었다. 이탈리아 음식을 완벽하게 내놓고 싶었기에 윤성용 오너 셰프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국립피자학교를 수료했다.

한류가 중국을 휩쓸던 2012년. 윤성용 셰프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렸다. 중국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총괄 셰프로 와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진짜 국경을 넘어야 하는 날이 온 셈이다. 먼 타국이었지만 고민하지 않았다. 그토록 꿈꾸던 총괄 셰프 자리였다.


윤성용레스토랑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윤성용 오너 셰프


제의를 수락한 윤성용 셰프는 중국으로 가기 전 이탈리아로 먼저 향했다. 이탈리안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총괄 셰프 자리인 만큼 책임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국립 피자학교를 다니며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하루를 한 달처럼 불태웠다.그렇게 이탈리안 요리를 정식으로 수료하고, 중국으로 넘어간 그는 6개 지점의 총괄 셰프가 됐다. 개인적으로 시작한 제빵 브랜드도 제법 성공시켰다. 통장의 잔고도 쌓이고 ‘윤성용’ 이름 세 글자의 명성도 쌓이기 시작했다.

순풍에 돛 단듯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두 줄로 그어진 임신테스트기였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그토록 원하던 총괄 셰프도 되고 아이까지 생기니 중국이 제 2의 고향이 되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중국에서의 타향살이가 아내와 태아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마음 한편에 스며든 불안은 공포가 되어 온몸을 휘감았다. 돌아볼 것도 없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맛집이 즐비한 연남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건 ‘윤성용레스토랑’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의 지난 삶을 돌아봐서일까. 그의 지난 삶이 지닌, 그 이름값의 무게가 오롯이 느껴졌다.

지난 날 백업 댄서로, 그리고 주방 보조로 남모를 노력 속에 살아온 세월이 어쩌면 그에게 명성욕을 키우게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윤성용레스토랑’에 걸린 저 이름만큼은 윤성용 자신이 걸어온 지난 삶에 대한 자신감이자,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을 위한 책임감이라는 것이다.
 


윤성용 오너 셰프의 아내 사랑은 대단하다. 벽면 한 부분을 아내와의 여행 사진으로 담았다


윤성용 셰프는 자신의 이름을 건 또 다른 레스토랑을 계획하고 있다. 역시 연남동에 자리 잡을 것이란다. 중식 전문 레스토랑이라고 귀띔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쳐난다. 아마도 그리 머지않은 시기, ‘윤성용’이란 이름의 다양한 레스토랑 간판을 연남동에서 보게 될 것이다.

윤성용레스토랑

문의 전화: 02-334-2017.

찾아가는 길: 서울 마포구 연남로1길 22.

대표 메뉴: 감베로니, 알리오올리오, 둥지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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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현성
star@gongshall.com
사진 정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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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박찬홍, 서은진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