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하루의 수집가

장윤지 작가

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뒤돌아보게 만드는 풍경이 있다. 꿈결에 설핏 떠오른 기막힌 아이디어처럼, 잊혀지기 전에 어딘가 꼼꼼히 적어둬야 할 것 같은 장면들. 장윤지 작가는 집요하게 이것들을 화폭에 갈무리한다. 어쩌다 휙 지나칠 수도 있었을 그 풍경들은, 알고 보면 처음부터 쉽게 지나치거나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림의 풍경은 어떤 특정한 대상을 벗어나 있다. 눈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 남들은 주목하지 않는 어디쯤에 가만 머물러 있다. 주체는 생략되고 선분은 끊겨 있다. 그곳에는 분명 ‘거시적인 관점’이 없다. 어딘가 미묘하고 불안정한 앵글. 작가는 중앙에 내세우기 어색한 것들을 기꺼이 화폭 가운데 초대한다. 어딘가 잘려나간 것 같거나 전체가 아닌 것 같은 미시적인 조각들을 말이다. 이들이 뿜는 잔잔한 갈증과 불안정한 기운에 때때로 매료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풍경은 먼저 사진으로, 그 다음 작업으로 이어진다. 
“가끔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듣던 과거의 날씨나 냄새, 기분들이 선하게 떠오르잖아요. 제겐 사진이 그래요. 사진을 들여다보면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그 무렵의 감정이 자연스레 다시 살아나죠. 그럴 때면 새삼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우유를 탔나> 24.2×24.2cm, 캔버스에 유채, 2017
 

<To joyce> 24.2×24.2cm, 캔버스에 유채, 2016
 
<쌈싸먹는 나와 자는 개> 60.6×60.6cm, 캔버스에 유채, 2017

장 작가의 그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어는 ‘시선’이다. 소외된 일상 속에서 운좋게 길어올린 우연한 시선, 기억 속에 붙들지 않으면 후회스러울 만큼 특별한 장면들이 작가를 붓으로 이끈다. 인기척을 눈치채고 도망치던 길고양이가 문득 멈춰 서서 물끄러미 뒤를 돌아볼 때, 지하철 맞은편 자리에 앉은 누군가의 해진 운동화, 전봇대 사이로 보이는 지붕, 초저녁 전등이 켜진 어느 집의 실루엣이. 그 개별적인 감정과 생각들이 캔버스에 색채로 도열하고 곳곳에 질감을 남긴다. 흥미로운 건 지문처럼 그림 하나하나에 붓질을 머금고 있는 오일의 굴곡. 마치 액체처럼 살아서 유동하는 듯한 이 양감으로 장 작가는 “기억의 흐름”을 표현한다.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끈질기게 기억 깊숙이 살아남아 작가를 활발하게 자극하는 힘이다. 
 
<보호색> 24.2×24.2cm, 캔버스에 유채, 2018
 
<My opposite> 45.5×45.5cm, 캔버스에 유채, 2016

이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들은 작은 것 하나 무심하게 넘길 줄 모르는, 다분히 사적인 그의 뷰파인더다. 공간을 시각화한다는 데서 풍경화로, 전체가 아닌 일부 사물을 담는 데서 정물화처럼도 보이지만, 장 작가의 주제는 오롯이 “나 자신의 시선”이다. 좀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풍경화도 정물화도 아닌, 작가 내면의 ‘자화상’에 더 가깝다.
“결국 이 사소한 시선들을 통해 저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듯해요.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 뒤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나’라는 주체가 있으니까. 그것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오늘과 내일의 나를 이루게 되겠죠.”

 

<Odds and ends> 45.5×45.5cm, 캔버스에 유채, 2018
 
<노란물통> 45.5×45.5cm, 캔버스에 유채, 2017

여러 상황에 휘말리고 무수한 생각을 하며 자잘한 감정에 반응하는 우리는, 인생이 휘갈기는 큰 그림을 한눈에 담지 못한다. 거기에는 사소하게 쌓여간 하루하루의 퇴적물을 꿰뚫는 통찰과 평생의 시간만큼 길고 긴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장 작가는 나름대로 삶을 통찰하는 가장 슬기로운 비결을 터득해온 듯하다. 당장 눈앞의 것들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고, 그들을 기념하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그림 전체를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니.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
사진 제공 장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