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공셸 # | 2.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

에디터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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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드 생팔을 알기 위한 8가지 키워드



<공셸#>는 작가, 도시, 행사 등 다양한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이슈를 8개의 키워드로 알아보는 코너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에서부터 숨겨져있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공셸#에서 알아보도록 한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은 1930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겪은 트라우마와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로 인하여 생긴 정신적인 아픔을 미술로써 치료하며 그림을 처음 그리게 되었다. 그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공포와 분노를 표현하면서 점차 미술에 매료되었고, 필연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2002년 그녀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왕성하게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지속적으로 미술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 왔다. 젊은 시절 한 때는 빼어난 미모로 보그지와 라이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는 모델이기도 하였고, 화가, 조각가, 설치미술가일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영화 감독, 건축과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녀의 예술적 행보를 이어갔다. 공셸에서는 8가지 키워드를 선정하여 그녀의 삶과 작품에 조금 더 다가가보고자 한다.




젊은 시절 보그지 표지를 장식했던 니키 드 생팔

   

“나는 분노에 찬 젊은 여성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분노에 찬 많은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있지만,
그들이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떠한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었다.
예술은 나의 구세주였다.”
 

 # 페미니즘

니키 드 생팔은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다. 여성에 대한 관심과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게 된 계기는 그녀의 어린시절에 큰 상처로 인한 것이다. 그녀는 11살에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이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다. 이후 어린 나이(19세)에 부모님 몰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였으나, 경제적인 어려움과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하여 신경쇠약에 걸리며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때 처음 치료의 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녀가 겪은 일들로 인한 분노를 작품으로 만들게 된다. 이후 그녀는 당대의 정치적인 상황과 성과 인종의 위계구조 등을 제시하고, 여성들이 제도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사회현실을 작품에 담고자 노력하였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아버지와 나 사이를 영원히 갈라 놓았다.
사랑이었던 모든 것이 증오로 변했다. 나는 살해되었다고 느꼈다.” 

  

#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

그녀의 초기에는 잡동사니 오브제를 한 곳에 모으는 ‘아상블라주’작업에 전념을 하였다. 이 후 1961년 갤러리제이에서 열린 첫 개인전 ‘마음대로 쏴!’를 통해 처음 사격회화 (슈팅페인트)를 선보였다. 사격회화란 작가가 그린 그림의 한 모퉁이에 달아둔 물감주머니를 총으로 쏴 무작위로 뿌려지게 하여 작품을 완성하게 하는 행위예술이다. 작가는 물론 관객도 총을 쏠 수 있었다. 이러한 ‘쏘는 행위’는 작가 스스로가 당대의 정치적인 상황과 성과 인종의 위계구조 등에서 해방되기 위한 노력이다. 그녀의 사격회화는 유럽 전역을 넘어 미국에까지 알려지며 그녀를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하였다.



니키 드 생팔이 선보인 사격회화 퍼포먼스

   

# 나나 (Nana)

니키는 점차 불면증과 신경쇠약증세가 호전되면서 자신감있고 행복한 여성상을 만들기 위해 임산부들과 함께 지내며 <나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나나’는 프랑스어로 여성을 일컫는 속어이다. 신체를 과장시키고 균형에 맞지않게 배치하면서 낙천적인 풍만한 여성이 즐겁고 유쾌하게 춤을 추는 듯한 자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나나>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수동적이거나 나약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를 통하여 사회적인 미적 기준이나 성의 위계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향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작가가 임신한 여성의 모습에서 나나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을 상기해보면, 작가는 단순한 비판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생의 근원에 대한 에너지를 통해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어떤 힘, 생의 기쁨이나 삶의 의지와 같은 근원적인 가치도 담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니키 드 생팔은 나나를 통해서 생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 퐁피두 센터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마날 수 있다. 그녀가 남편인 장 팅겔리와 함께 1982년에 작업한 <스트라빈스키 분수>가 퐁피두 센터 앞에 설치되어 있다. 이 분수는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기기묘묘하게 생긴 여러 종류의 조형물들이 쉬지 않고 물을 뿜어내고 있다. 파리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니키 드 생팔 & 장 팅겔리 <스트라빈스키 분수>


# 타로공원 (tarot garden)

그녀의 작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카발비오에 조성된 '타로공원'이다. 그녀가 가우디의 구엘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20여년간의 공사를 거쳐 1998년에 완성하였다. 22개의 타로카드 형상이 조각으로 건축된 곳으로, 니키는 타로카드 형상이 삶의 힘과 단계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공간을 빛 판타지, 환희가 넘치는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거울, 유리, 도기 등을 모자이크로 장식하였다. 작가에게 타로공원은 삶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난 뒤의 완전한 변화를 의미한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예술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 것처럼 타로공원이 불안에서 벗어나 동심과 활력을 얻는 유토피아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위치한 타로공원

   

# 니스 (Nice)

그녀는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2001년에 그림과 조각 93점, 판화 18점, 석판화 40점, 실크스크린 54점 등 총 190점의 작품과 그 밖의 수많은 독창적인 자료들을 프랑스 니스 근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에도 니스 근현대미술관에 영구전시되어 있다. 니스 근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니키 드 생팔의 작품들은 지난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니키 드 생팔 – 나나의 외출'이라는 전시로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되었다.


# 요코 마즈다 시즈에 (Yoko Masuda Shizue)

니키 드 생팔에겐 몇 명의 컬렉터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요코 마즈다 시즈에’다. 그녀는 전문 컬렉터도 아니었고, 미술품에 조예가 깊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니키 드 생팔 이외의 다른 작가 작품을 소장하지 않은 ‘니키 드 생팔만의 컬렉터’이다. 그녀는 1980년대부터 니키와 교류했고 일본 도치기 현에서 니키미술관을 창립해서 운영하기도 했었다. 2015년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일본 사상 최대 규모의 '니키 드 생팔 회고전'이 개최되었는데, 전시된 작품들 중 약 90%가 그녀의 소장품이었다. 이번에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된 전시회에서는 마즈다 컬렉션 127점이 소개되었는데, 이 작품들로 니키 드 생팔의 예술세계 전반과 마즈다와 니키의 우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된 '니키 드 생팔 - 마즈다 컬렉션'


# 12억

니키 드 생팔의 수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비싼 작품은 무엇일까? 지난 2006년 겨울 소더비 뉴욕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그녀가 1965년에서 67년까지 작업한 작품 <Ana Lena en Grèce> 이 1,136,000달러로 낙찰되었다. 현재 환율로 약 12억원에 달한다. 이 경매로 니키 드 생팔은 전 세계 여성 작가중에서는 17번째로 높은 금액으로 작품이 낙찰된 작가가 되었다. (2015년 기준)



니키 드 생팔, <Ana Lena en Grèce,> 1965–67

  



에디터 김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