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일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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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현 작가



언제부턴가 일상은 답답하기만 하고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다. 매일 같은 일과가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일상의 소중함 보다는 지루함이 더 커져버렸다. ‘일상탈출’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작품은 없을까? 일상의 공간에 따뜻한 색감을 더해 안온한 시간을 선사하는 안소현 작가를 공셸이 만나봤다.

안소현 작가의 작품이 담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곳들이다. 한번쯤은 본 듯한 공간들이 따뜻한 햇살과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채워져 특별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이렇게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분의방 (Room of treetop)> 90.9x60.6_Acrylic on canvas_2017


어려서부터 꿈이 화가였고,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던 소녀는 예중, 예고를 거쳐 미대에 진학한다. 그렇게 10여 년간 그림을 그려왔건만 작가의 꿈을 응원해주기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이었다. 그림을 그려서는 먹고살기 힘들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중요하다며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셨던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이 깊었다. 그렇게 안소현 작가는 20대를 암울하고 절망적으로 보냈다. 생계를 위해 알바만 하며 먹고살기 급급했던 시기였다.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나날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만난 지금의 남편. 남편이 없었다면 작가는 다시 붓을 들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작가의 꿈과 그녀가 가진 재능을 알아보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림을 그려보라고. 선뜻 붓을 들기에는 현실적인 고민이 너무 많았다. 두 사람이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일을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남편의 응원에 용기를 내 거의 10년 만에 캔버스 앞에 섰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더니 깊은 곳에서부터 억눌려 있던 해방감에 수많은 고민들이 사라졌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누군가에게 지지를 받으며 그림을 그린 것은 처음이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니 행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진정한 나 자신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2015년, 32살의 안소현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_100x80.3cm_Acrylic on canvas_2017


안소현의 첫 작품 은 지금의 일상 모습을 담는 그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추상적인 작품이다. 부부가 인도여행을 하면서 받았던 영감을 캔버스에 표현하였다. 그림을 그리지 못한 세월 동안 억눌려 있던 모든 걸 펼쳐보고 싶었다. 6개월에 걸쳐서 완성한 이 작품은 작가에게는 그 어떤 작품보다 귀하고 소중하다.


<텅 빈 대화 ( Empty conversation )>_162.2x130.3cm_ Acrylic on canvas_2016
이 작품은 재즈 힙합 뮤지션 A June & J Beat & 악토버의 앨범 커버로도 사용되었다.

그 동안 억눌렸던 그림에 대한 열망을 첫 작품에 모두 다 풀어낸 후,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반대했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작가의 어머니는 그녀가 25살 때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 슬픔, 분노, 후회 등 다양한 감정들이 뒤얽혀서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작품으로나마 휴식을 선물하고 싶은 바람에 <텅 빈 대화>를 그린다. 작가는 어머니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 큰 그늘막 아래에서 편히 쉬시길 바랐다. 이제 다시는 대화를 나눠볼 순 없지만, 작품 속 휴식의 공간에 어머니를 초대해 차분하게 대화를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_193.9x130.3cm_Acrylic on canvas_2017
출판사 창비_[경애의 마음/김금희] 책표지로 사용된 작품이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이 그림을 그리면서 받는 위안과 행복한 감정을 작품으로 전하고 싶었다. 어떻게 행복과 위안을 표현할까 고민 하던 차에 행복이 멀리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상 속에서 따뜻한 햇살을 찾아다니며, 그 햇빛 한줄기에 얻은 작은 위안이 떠올랐다. 햇볕과 일상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스마트폰 속에 담아 두었던 햇빛이 드리워진 일상의 공간을 캔버스로 옮긴다. 작가는 사실적인 형태에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일상의 햇빛을 보며 느꼈던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을 파스텔 톤의 색감으로 담아내었다. 작가에게 색은 곧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초기의 작품(<텅 빈 대화>)에서는 억눌려있던 극단적인 감정의 표출을 위하여 원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후 점차적으로 편안하고 안정된 작가의 현재 상황을 반영한 듯 원색보다는 차분하고 빛바랜 듯한 색을 주로 사용한다.

 


<햇빛에 담긴 날> acrylic on canvas, 80x130cm, 2018

작가는 자신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을 담아내며 스스로도 많은 위안을 받았고, 이제는 그 공간에 타인들을 초대한다. 작가가 초기에 담은 일상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나 점차 작품 속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등장해 휴식의 공간에 함께 하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휴식과 위안의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쉬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것이다.


가장 최근 작업인 <일상의 온기와 환상>에서는 작가의 일상이 아닌 타국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작업이 작가가 직접 보고 느낀 일상을 주로 그렸다면, 이번에는 타인의 일상을 담아내보고 싶었다. 이번에 캔버스에 담긴 일상은 직접 방문한 곳이 아닌 구글 스트리트뷰를 통하여 바라 본 멕시코의 일상이다.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작가에게 타인의 일상은 마치 환상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구글 스트리트뷰를 통해 바라본 그들의 일상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온기를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이제 전업작가로 활동한지 만 3년차의 풋풋한 신인이지만 그 짧은 시간 내에 10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도 참여하고, 다수의 책 표지에도 작품이 사용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소현 작가. 앞으로도 그녀가 전해줄 일상의 따뜻한 위로가 기다려진다.



에디터 김은지
사진제공 안소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