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뉴욕을 포착하는 새로운 방법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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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 작가



타임 스퀘어, 옐로우 캡,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홍보하는 대형간판들... 뉴욕을 상징하는 것들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인물들의 얼굴이나 곳곳이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실재가 아닌 환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뉴욕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꿈의 도시 뉴욕에 와 있는 듯하다. 김호성 작가는 이내 고백한다. “저는 뉴욕에 가 본적이 없습니다”


작가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닌 구글 어스(Google Earth)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뉴욕의 모습을 담는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최소 14시간을 가야 볼 수 있는 뉴욕을 클릭 한 번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방구석에서 마우스로 클릭하여 뉴욕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화면 속 뉴욕을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구도를 잡고 캡쳐를 한다. 그렇게 김호성은 뉴욕을 포착한다.

 

<B1412>_50cmx75cm_pigmentprint_2014


그가 포착한 뉴욕의 인물들은 얼굴이 모두 블러(Blur) 처리가 되어 있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구글에서 초상권 보호를 위하여 블러 처리 한 것이다. 작가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도시의 익명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사진 속 인물들은 저마다 바쁘게 살아 움직이는 듯 하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그저 유령처럼 보인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뉴욕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좌) _100cmx75cm_pigmentprint_2014 | (우) _100cmx75cm_pigmentprint_2014


그의 작품 속 뉴욕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수개월 전에 구글에서 촬영한 그 시점에 시간은 멈춰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의 중심부인 뉴욕의 시간은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구글 속 뉴욕은 시간이 멈춰 있기 때문에 실제 뉴욕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낯선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100cmx150cm_pigmentprint_2014


그렇다면 작가가 모니터 너머로 만난 뉴욕의 풍경과 사람들을 포착해서 완성한 이미지를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진이라고 하면, 피사체를 적절하게 담기 위한 구도를 잡고 직접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 순간을 포착한다. 그리고 이 때 촬영된 이미지를 인화하여 완성한다. 김호성의 작업은 ‘셔터’를 누르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기에 과연 이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아티스트이자 ‘개념미술’의 토대를 만든 솔 르윗(Sol LeWitt)은 “개념미술에서는 생각이나 관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 예술가가 예술의 관념적 형식을 사용할 때, 그것은 모든 계획과 결정이 미리 만들어지고 실행은 요식행위임을 의미한다. 생각이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라고 하였다. 즉, 작가가 뉴욕을 포착하는 ‘캡쳐’라는 행위는 단순한 수단일 뿐이고, 모니터 너머의 뉴욕을 관찰하면서 도출해낸 생각이나 개념이 가장 중요하기에, 그의 작품이 예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작가는 “나는 나의 작품이 사진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 또한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며,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다”라며 자신의 작품이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했다.

 <B1416>_50cmx75cm_pigmentprint_2014


그는 현재 이태원 경리단길에 위치한 24시간 열려 있는 무인갤러리에서 ‘먼슬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사실 전시라기보다는 하나의 시도에 가깝다. 작품 감상과 이해보다는 SNS용 사진을 위해 긴 줄 서서 기다리는 어느 미술관을 떠오르게 만드는 <예술적 풍경>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9시간>전 등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한번쯤은 기획의도를 곱씹어 보게 하는 전시들이다.

  

(좌) <예술적 풍경>전 전시 포스터 | (우) <9시간>전 전시전경


김호성 작가는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항상 새로운 시도를 즐긴다. 그렇다보니 정작 직접 제대로 찍은 사진 작품을 선보인 적은 많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카메라 셔터로 순간을 포착해 완성한 통상적인 의미의 사진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한다. 어쩌면 다양한 시도로 점철되어 있는 그의 예술적 행보에서 정통 사진 작업은 오히려 재미난 변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그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에디터 김은지
사진제공 김호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