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미켈란젤로 피에타가 레전드인 이유?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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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와 피에타

이탈리아 로마 안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바티칸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최고 예술가들의 흔적이 깃든 성 베드로 대성전이 있다. 성전 안에는, 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가 사람들을 기다린다. 

하지만 피에타의 아름다움은 먼발치에서야 겨우 감상할 수 있다. 약 2cm의 두꺼운 방탄유리 속에 갇혀있기 때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피에타 테러사건'!

1972년 5월, 피에타를 감상하던 한 남자가 피에타를 망치로 부수기 시작했다. "내가 부활한 예수"라 외치던 그의 정체는 헝가리 출신의 지질학자 라즐로 토스였다.

지질학자의 암석망치 앞에서 단단한 대리석 조각은 힘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성모의 코가 떨어져 나갔고, 예수를 안고 있던 왼쪽 손과 팔은 가루가 됐다. 

다행히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됐지만, 그는 처벌 대신 정신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게 됐다. 사건 이후 10개월의 복원 과정을 거친 끝에 피에타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방탄유리 속에 갇혀 관람객들과는 거리를 둔 채 멀리 떨어지고 만다. 




미켈란젤로 피에타의 영향력?

미켈란젤로 피에타는 수없이 오마주 되고 패러디될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피에타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본래 피에타는 가톨릭 미술의 주제 중 하나이다. 동정, 슬픔, 경건함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슬퍼하는 모습이나 당시의 감정과 상황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의미한다.

사실 미켈란젤로도 피에타를 주제로 한 조각을 더 많이 남겼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바로 로마에 남은 피에타이다. 그래서 흔히 미켈란젤로 피에타를 언급할 때는, 로마의 피에타(상단 이미지)를 의미한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무릎 위에 안고 있는 형태다. 미켈란젤로보다 앞선 1300~1400년대에 독일에서 제작된 피에타 조각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차이는 재료와 표현방식에 있다.

독일의 조각상은 주로 나무로 제작해, 성모의 슬픈 표정과 예수 몸의 못자국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거친 표현 탓에 슬프고 비관적인 감정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당시 조각의 포인트는 '고통을 얼마나 잘 묘사하느냐'였기 때문!

반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새하얗고 매끄러운 대리석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예수는 성모의 품에 편안히 누워있고, 살짝 고개를 떨군 성모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평온해서 그저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조각상을 본 사람들은 두 번 놀라게 된다. “와, 돌로 살결이랑 옷 주름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와, 통곡하는 것보다 더 슬퍼 보이는데?” 하고 말이다. 실제로 1499년, 20대 초반의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처음 세상에 내놨을 때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켈란젤로 피에타의 특별한 구도?

르네상스 조각과 회화에선 피라미드 삼각구도를 많이 활용한다. 피에타 역시 삼각구도를 따라 제작됐다. 삼각형 안에 장면이나 주제를 배치한 뒤, 관람객의 집중도를 높이고 안정적인 조형미를 구현했다.

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무거운 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각 하단이 지지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했다.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의 머리는 더 작게, 몸통과 입고 있는 옷은 더 크고 부풀게 만든다. 거기에 예수를 감싸고 있는 옷감이 바닥까지 이어지도록 해서 조각 하단이 안정적으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설계한다.

피에타의 높이는 약 2m. 인간의 눈높이에선 가냘픈 예수보다 '커다란 성모의 존재감'과 '예수의 늘어진 손'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주인공이 성모 아니야?”하고 수근거렸던 이유도 그 때문!




미켈란젤로 피에타의 진짜 주인공은?

작품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비로소 미켈란젤로의 진짜 의도를 알 수 있다. 삼각구도! 그 속에 힘없이 축 늘어진 예수! 그 외엔 다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신의 관점으로 본 피에타의 주인공은 단 하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성모가 너무 젊어보인다”, “아들이 죽었는데도 전혀 슬퍼보이지 않는다” 등 젊은 예술가를 향한 조롱이 쏟아졌다.

미켈란젤로는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여인을 젊고 아름답게 표현한 게 무슨 문제냐”면서 “신의 어머니는 지상의 어머니처럼 울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미켈란젤로는 왜 인체를 탐구했을까? 

피에타 속 사실적인 인체 표현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팔다리의 근육, 생생한 핏줄과 뼈는 인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라이벌 레오나르도 다빈치 못지 않게 인체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1494년부터 피렌체의 수도원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인체 해부학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는 '신의 모습을 따라 인간이 창조됐다면, 인간에게도 그 신성함이 깃들어 있고, 이상적인 신체야말로 신성함을 구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체에 대한 깊은 관심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Art Contents Curation: 영화 <아거니 앤 엑스터시>

고전영화 <아거니 앤 엑스터시>는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신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보여준다. 교황과 대화 할 때에도, "내가 예술을 할 수 있는 건 신이 내려준 능력"이라며 진심으로 감사해한다. 외롭고 힘든 작업들을 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걸작을 남긴 이유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들의 죽음을 맞닥뜨린 어머니! 인간을 구원하려던 예수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성모 마리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신에 대한 존경'을 모두 갖췄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이상이 가장 잘 담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생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멋진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던 미켈란젤로! 조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대리석 산지를 찾아다니고, 수개월에 걸쳐 신중하게 조각할 돌을 고르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지식을 총동원했던 미켈란젤로!

그 모든 건, 전 과정에 심혈을 기울여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예술가의 고집'이자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던 '인간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클릭 / 방탄유리에 갇혀버린 레전드 조각상, 미켈란젤로 피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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