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영화 <코코>를 볼 때 꼭 알아야 할 아티스트는?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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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미술의 아이콘, 프리다칼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담아낸 명작 애니메이션 <코코>!

2017년 개봉해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작품엔 ‘죽은 자들의 세상’이라는 황홀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곳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불굴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죽지 않고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짙은 갈매기 눈썹, 단정하게 땋아 올린 검은 머리에 기하학적 패턴의 드레스까지, 영락없이 프리다칼로 임을 알 수 있다. 멕시코의 수많은 아티스트 중에서 프리다 칼로가 등장한 이유는 뭘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면, 죽은 자들의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노래하는 <코코>!

영화는 죽은 자들의 세상에 살고 있는 프리다칼로를 통해, 그 역시 전세계인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음을 노래한다. 실제로 프리다 칼로와 그의 작품들은 미술뿐 아니라 만화, 패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끊임없이 오마주 되고 있을 만큼, 수많은 아티스트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사실 프리다 칼로는 잊혀질 뻔한 화가였다.




잊혀질 뻔한 예술가, 프리다칼로

프리다는 1938년에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고 1940년엔 20세기 멕시코 예술전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대중은 그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건, 세상을 떠나고 약 20년이 지난 뒤였다. 여성예술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1970년대 미국, 린다 노클린의 질문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을까”에서 시작된 것!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위대한 여성 예술가를 찾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프리다칼로의 강렬한 작품과 그 속에 담긴 스토리, 작가의 기구했던 삶은 시대의 물결을 타고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의 작품을 국보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오늘날까지 멕시코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 프리다칼로의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ART Curation 1: 영화 <프리다>

2002년 개봉한 영화 <프리다>는 프리다칼로의 기구했던 삶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담아낸다.

영화는 프리다칼로가 살면서 겪은 큰 시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고생했던 프리다는 18살에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척추와 다리, 자궁을 크게 다치고 평생 30여 차례 큰 수술을 받게 된다. 사고로 인한 육체와 정신의 고통은 그의 작품에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프리다칼로는 병상에 누워서도 그림을 그릴만큼 창작에 열정을 보였다. 그의 작품에 자화상이 유독 많은 것도 불편했던 몸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나를 그리는 이유는 너무 자주 외롭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 프리다 칼로



프리다칼로 대표작 <부서진 척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부서진 척추(1944)>를 보면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먼지바람만 가득할 것 같은 황폐한 사막, 그 가운데 서있는 알몸의 여인.

온몸에 못이 박힌 채 울고 있는 여인의 몸통은 반으로 갈라져 하얀 척추를 드러낸다. 조각난 그리스 기둥 모양의 척추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몸을 힘겹게 지탱한다. 모든 걸 초월한 듯 무심하게 바라보는 눈빛, 그 눈빛엔 프리다의 기구했던 삶이 함축적으로 담겼다.



운명적인 그러나 치명적이었던 사랑, 디에고 리베라

의사가 되길 꿈꿨지만 사고로 꿈이 좌절된 프리다칼로는 운명적으로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멕시코 문화운동을 주도하던 디에고의 인정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후 두 사람은 21살이라는 나이 차이와 가족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그건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일생 동안 나는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이다.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 프리다칼로

결혼 초기, 프리다칼로는 화가 활동보단 내조에 매진했다. 그러나 디에고 리베라는 지독한 바람둥이였다. 심지어 프리다칼로의 여동생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거듭되는 유산과 불임, 남편의 바람에 이르는 불행이 그녀를 찾아왔다.



멕시코 아이콘 프리다칼로,  세계를 감동시키다

프리다는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붓을 잡았다. 1939년엔 파리에서 마르셀 뒤샹의 도움을 받아 전시를 열었는데, 피카소와 호안 미로, 칸딘스키 등 당대 유명 예술가들의 찬사를 얻게 된다. 특히 칸딘스키는 프리다의 그림을 보고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마침 세계적인 미술관 루브르박물관이 프리다의 자화상을 구입하면서 ‘루브르에 진출한 최초의 중남미 여성 화가’로 기록되기도 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적인 관습에 맞서며 정치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이었던 프리다 칼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내면을 작품에 담아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던 프리다의 삶! 그가 남긴 작품과 이야기는 앞으로도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지 않을까?




ART Curation 2: 책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칼로는 ‘긴 고통의 시간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로, 그 시간들을 일기로도 남겼다. 바로 책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다.

이 책의 포인트는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사랑과 증오를 함께 느껴볼 수 있다는 점, 프리다 작품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멕시코 아즈텍 문명에 대한 설명도 함께 들어 있다는 점이다. 

화가 프리다칼로의 진솔한 면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인만큼, 프리다칼로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싶은 분들은 꼭 보길 추천한다.




클릭 / 프리다칼로는 왜 패션아이콘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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