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히틀러의 비뚤어진 예술 사랑법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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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히틀러: 미술 애호가? 지독한 독재자? 

오페라와 클래식을 사랑하고, 미술을 즐긴 예술 애호가! 그러나 세계정복을 꿈꾸며 전쟁을 일으키고,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세상을 공포에 빠트린 나치의 지도자! 전혀 다른 사람 같지만 한 사람, '아돌프 히틀러'의 이야기다.



숨겨져있던 세계의 명화가 발견되다! | 구를리트 컬렉션

2012년 2월, 독일의 한 아파트에서 19~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발견됐다. 피카소, 모네, 르누아르 등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약 1,500여 점이 숨겨져 있었던 것!

이 작품들은 일명 구를리트 컬렉션. 히틀러의 미술상이었던 힐데브란트 구를리트가 아들 롤프 구를리트에게 물려준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나치 정권이 유대인에게서 ‘퇴폐미술’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은 작품들이었다. 당시 발견된 구를리트 컬렉션 작품들의 가치는 약 10억 유로, 우리 돈으로 1조 3천억 원에 달했다.

퇴폐미술은 반-나치 성향의 미술과 비-아리아인의 미술 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나치가 만든 말이었다. 순수하고 자유분방한 감정을 표현한 거의 모든 현대미술이 여기에 해당 됐다. 피카소, 몬드리안, 칸딘스키, 뭉크 등 오늘날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 112명은 퇴폐예술가로 낙인찍혔고, 1만 7천여 점의 작품이 불태워지거나 몰수당해야만 했다.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작품을 모은 전시회? | 퇴폐미술전

나치 정권은 1937년 ‘퇴폐미술전’을 개최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약탈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전시 작품들은 퇴폐적이고 타락했다고 주장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품들을 액자도 없이 좁은 복도에 마구잡이로 전시했고, 기형적인 얼굴 사진과 나란히 놓기도 하며 관객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퇴폐미술 전시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혈통주의를 강조했다. 게르만족과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술 양식인 고전주의를 내세웠고, 이에 반하는 작품들은 반사회적인 것으로 재단하고 파괴했다. 특히 샤갈, 칸딘스키 등 당시 새로운 사조를 주도한 많은 화가들이 유대인 출신이었는데, 이는 히틀러의 정치 근간인 반유대주의를 선전하는데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나치는 고전주의가 아닌 예술은 퇴폐하고 타락한 것으로 치부하고 고전 양식의 바탕에 자신들의 군국주의 이념을 담아 정치 선동을 이어갔다.



화가를 꿈꾸던 히틀러의 비뚤어진 예술 사랑?!

사실 히틀러는 화가를 꿈꾸던 화가 지망생이었다. 빈 예술 대학교에 지원하지만 두 번이나 낙방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가 이때부터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갖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도 말한다.

히틀러는 미대 입시 실패 이후에도 빈을 떠나지 않았다. 그림엽서를 그려 판매해 생활비를 버는 등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돈을 모아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러 갈 정도로 예술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이후에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바탕으로 '예술이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나치, 본격적인 예술 약탈을 시작하다!  | 제국문화부, ERR

1933년, 히틀러는 총리에 임명되자마자 ‘제국문화부’를 만든다. 민족계몽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을 선전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제국미술원의 회원이 되어야 활동할 수 있었다. 작품활동을 하거나, 전시, 비평을 하는 것도 모두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한편, 히틀러는 미술품의 소유와 과시에 집착했습니다.

1940년, 히틀러는 어린 시절을 보낸 오스트리아 ‘린츠’에 ‘총통박물관’을 세우기로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 점령국에서 약탈한 예술품들을 한 곳에 모아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ERR이라는 문화재 약탈 조직까지 만든다. 

ERR은 나치의 인종, 종교 이론가 알프레드 로젠버그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 로젠버그는 히틀러의 종교, 문화, 교육 분야 조력자로 활동하며 히틀러의 비이성적인 예술 욕구를 채워줬다.

로젠버그를 필두로 한 ERR이 유럽과 서아프리카 점령국 일대에서 약탈한 문화재는 500만 점에 이른다. 하지만 아직 찾지 못한 것들도 많아 정확한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고 전해진다.



인류의 품으로 돌아온 세계의 명작들

1921년 그려진 앙리 마티스의 <앉아있는 여인> 역시 나치가 빼앗아 간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은 당시 유명한 유대계 미술상인이었던 폴 로젠버그의 소유였다. 하지만 로젠버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약탈 당한 뒤 70여 년간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2012년, 구를리트의 아파트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5년, 독일 법원은 이 작품을 원래 소유자인 폴 로젠버그의 후손에게 반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계의 명작은 긴 세월을 돌아 힘겹게 제 자리로 돌아왔다.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술을 계몽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억압하고, 약탈했다. 수많은 작품들이 빼앗기거나 불태워졌고 예술가들은 추방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곁에서 행복과 위안을 주고 있다. 히틀러의 비뚤어진 예술 덕질, 당신에겐 어떻게 보이는가?



ART C: curation contents

나치와 나치 시대의 예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ART C가 추천하는 아래 콘텐츠를 만나보자!

첫 번째 추천은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 시대를 나락으로 빠뜨린 한 사람의 광기와 만행을 근본적으로 파헤쳐볼 수 있는 책이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어떻게 권력을 잡고, 대중을 선동했는지 알 수 있다. 배경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두 번 다시 인류에게 이런 비극은 찾을 테니까.

두 번째는 영화 <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 나치로부터 예술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없었을까? 모뉴먼츠 맨은, 나치에 맞서 예술품을 지킨 일명 ‘예술품 전담부대’를 말한다. 인류의 명작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특수부대원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예술 작품을 보존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우리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명화들이 새삼 소중하다고 느껴진다.

마지막 추천은 영화 <작가 미상>이다. 현존하는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유년시절을 나치와 함께 보낸 주인공의 이야기로, 나치가 한 예술가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인종차별 때문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  전쟁 후 사회주의 체제 아래 정치적으로 동원된 미술의 현실을 볼 수 있다.





클릭 / (미대 입시 실패자) 히틀러의 특별한 예술 덕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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