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바스키아를 읽는 새로운 방법! 앤디워홀 다이어리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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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시회가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바스키아의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입니다.

바스키아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어도, 그가 그린 그림은 익숙하실 겁니다.

'공룡이나 왕관 같은 기호'와 '삐뚤빼뚤한 글씨'는 패션과 음악 분야에서 자주 활용됐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바스키아라는 사람과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보고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전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바스키아 작품 150점을 원화로 만날 기회!

포토존보다는 작품 감상에 집중하기 좋은 전시!






전시정보

- 기간: 2020.10.8 ~2021.2.7

- 시간: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입장 마감 오후 7시)

- 장소: 롯데뮤지엄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 타워 7층)

- 요금: 성인 15000원 / 청소년 13000원 / 어린이 10000원 (📌온라인 사전예매 추천!)

- 관람문의: 1544-7744






<앤디 워홀의 다이어리>로 본 바스키아

출처: <장 미쉘 바스키아> 전시 / 도서 <앤디워홀의 일기>


1982. 10. 4. 

브루노 비쇼프버거를 만나러 갔는데, 그가 장 미쉘 바스키아를 데려왔다. 그리니치빌리지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SAMO(세이모)'라는 이름을 쓰는 그 아이다. 나는 이곳저곳에서 그를 만나 10달러를 쥐여줬고, 그가 그림을 그린 티셔츠를 세렌디피티에서 팔아볼 수 있게 주선해 준 적도 있다. 그는 나를 귀찮게 하는 그런 유형의 아이였다.

- 이미 스타였던 앤디 워홀에게, 바스키아와의 첫 만남은 그리 인상 깊지 않았나 봅니다. 실은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어떻게든 스타가 되어보려는 수많은 그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로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1982년이면 장 미쉘 바스키아도 그저 풋내기는 아니었습니다. 바스키아는 1980년 디에고 코르타즈(영화 제작자 겸 음악가 겸 큐레이터)의 소개로 그룹전 <더 타임스 스퀘어 쇼>에 참여하고, 1981년엔 <뉴욕/뉴 웨이브>전시에도 참여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한 뒤였기 때문입니다.

-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1981년 작품 <New York, New York>입니다. 일기에 언급된 '브루노 비쇼프버거'는 바스키아, 앤디 워홀과 가깝게 지낸 스위스 갤러리스트인데요. 1981년에 이탈리아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도왔고, 이후에는 워홀과 바스키아의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1983. 3. 23. 

우리는 2년마다 열리는 <뉴 아트 쇼>의 오프닝 티켓을 얻었다. 딱 1960년대 스타일이다. (키스 해링은 일본에서 도착 후 3일 머물고 다시 파리로 간다. 정말 대단하다. 그의 인기는 장난이 아니다.) 장 미쉘 바스키아의 전시는 LA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 약 6개월 사이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장 미쉘 바스키아의 LA 쇼는 매진이 될 정도였어요.

- 팝 아티스트인 키스 해링과의 교류도 엿볼 수 있습니다. 1983년 키스 해링은 도쿄의 Watari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습니다. 동시대에 교류했던 아티스트들의 화풍을 보면, 알게 모르게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스키아를 보고 그린 게 아닐까 싶은 그림도 보이는데요. 발견하셨나요?



1983. 9.13. 

바스키아가 찾아왔다. ... 담배 한 갑을 사고 싶어서 자기 그림을 75센트에 팔았는데 일주일 뒤에 그의 갤러리에서 전화가 와서는 똑같은 그림을 자기네는 1000달러에 샀다고 말했다. 바스키아는 그게 웃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건 웃기는 일이다. 그는 자기 그림을 2달러에 살 사람이 혹시 있나 찾아보고 있었다. 요즘 바스키아의 작품들은 15000달러에 팔리고 있다. 정작 그는 어떤 사람이 자기 작품을 2달러에 사 줄지 궁금해한다.

- 바스키아는 티셔츠나 담배 포장지 등에 그림을 그려서 푼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아는 그 비싼 가격은 아니었단 얘기죠! 유명해지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 팔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생계를 위해서였고, 이때는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도 보셨듯, 그는 이미 미술계가 주목하는 천재 아티스트, 스타였기 때문입니다.

- 바스키아는 전과 똑같이 그림을 그렸지만, 그 그림의 가치는 달랐습니다. 갤러리를 비롯한 미술계의 사람들은 천재 아티스트인 바스키아의 작품에 선뜻 비싼 가격을 지불했고, 더 비싼 가격에 판매를 하면서 작품의 값을 올렸습니다. 가격을 통해 가치를 올린 것인지, 가치를 올려서 가격을 올린 것인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바스키아는 이런 상황을 '웃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1983.10.11. 

로니 커트론이 집으로 왔다. 그는 ... 바스키아는 마드리드로 갔다고 했다. 바스키아는 너무 빨리 유명해지려고 한다. 만약 모든 일이 잘 된다면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 로니 커트론은 팝 아티스트입니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앤디 워홀의 조수로 일했던 사람이기도 해요. 만화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1984.5.5.

날씨가 좋아서 우리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거닐었다. 나와 바스키아가 처음으로 만난 곳인데, 그는 거기서 '세이모'라는 이름으로 그래피티를 하고, 티셔츠에 그림을 그렸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향수에 젖었다. 이후 바스키아의 전시는 아주 괜찮았다. 진짜, 정말로.

- 이제는 장 미쉘 바스키아를 '귀찮은 아이'가 아니라 '동시대의 훌륭한 아티스트'로 대하는 앤디 워홀! 서로 친해지고 난 뒤에 "우리 그때 그랬었지" 하면서 추억놀이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요?



1984.5.16.

키스 해링의 파티에 갔는데, 문밖에 입장권을 파는 꼬마들이 있었다. 무료입장이었는데도, 존 섹스의 공연이 있었다. 마돈나의 공연은 늦게 시작해서 다행히 첫 부분은 들을 수 있었다. 파티에 있던 애들은 모두 스티븐 스프라우스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돈을 벌어 그런 걸 입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스티븐 스프라우스(Stephen SPROUSE)는 루이비통 컬렉션의 주인공이 되었던 아티스트입니다.




1984.8.5.

바스키아가 클럽 라임라이트에서 하는 지메인 잭슨 파티에 가자고 했다. 우리가 모르는 멍청한 마피아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그런 파티였다. 그는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갔는데, 거기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꺼지라고 했다. 바스키아가 나에게 "흑인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알았죠?"라고 했다. 바스키아는 그곳에서 계속 서성거리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이, 어떻게 지내?"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랑 학교라도 같이 다녔나 보지? 바스키아는 나에게 자기가 브루클린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고 말해줬다.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사립학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파산해 버스를 타고 공립학교로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이탈리아 애들이 매일같이 두들겨 팼다고 한다. 그는 그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정말 교육이란 중요하다. 그가 똑똑한 이유가 다 있다.

바스키아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해서 우리는 그레이트 존스 가로 내려갔다. ... 그는 나에게 공동 작업할 작품들을 몇 점 건네주었다. 집으로 갔다.

- 바스키아는 자신을 '검은 피카소'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는 바스키아가 싫어하는 두 가지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우선, 제2의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난 그냥 장 미쉘 바스키아야!" "난 전설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그의 넘치는 자신감을 볼 수 있습니다. 

- 게다가 '검은'이라는 말도 싫어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이 일기가 말해줍니다. 바스키아는 "내가 백인이었다면, 사람들은 날 그냥 천재 아티스트라고 했을 거야"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차별과 부조리에 반항하는 수많은 흑인의 역사를 바스키아의 삶 속에서도 발견합니다.




1984.10.8. 

바스키아와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15초마다 초인종을 눌러 대고 있었다. 옛날 팩토리가 생각났다. 그는 "오기 전에 전화 좀 해주지그래?"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가 잠잘 곳을 찾아 떠돌아다닐 때 잠시 지낼 곳을 제공해 주었던 사람에게 준 웃긴 낙서가 지금은 무려 5000달러에 팔린다고 한다. 이제 바스키아는 비즈니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편 어떻게 모든 게 그냥 재미로 끝나지 않는지 배우는 중이다. 그런데 한 가지,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은 나에게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그냥 제품에 불과한 걸까? 복잡한 문제다.

- 1980년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했던 바스키아. 일기에서도 볼 수 있듯 불과 4년 만에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변했습니다. 그것도 너무 많이요. 노숙생활을 할 때 그렸던 그림이 5000달러에 팔릴 정도고, 계속해서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죠.  바스키아는 어땠을까요? 원하던 스타가 되어서 행복했을까요? 아니면 그 유명세 못지않은 불안감에 시달렸을까요? 사실 우리는 그가 얼마 뒤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었나 봐...'하고 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바스키아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겠죠.

- 이미 이 모든 상황의 유경험자인 앤디 워홀이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다시금 떠올리는 것도 재밌습니다. 천하의 앤디 워홀도 복잡한 문제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네요. 정말 예술은 무엇일까요?





이후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전시장에서 작품과 사진으로 더욱 생생하게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는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 정도로 돈독했다'라는 건 분명합니다.

앤디 워홀은 바스키아의 풋내기 시절부터 절정기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었고, 바스키아에게 워홀은 자신의 우상이자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었으니까요.

여러분의 삶에도 앤디 워홀 혹은 바스키아 같은 존재가 있나요?




클릭 /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즐기는 방법!

공셸TV 유튜브 채널에서, 해당 전시를 영상으로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