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팀버튼 영화의 실존 인물, 마가렛 킨! 그는 왜 이름을 밝히지 못했을까?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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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아이즈: 마가렛 킨 회고전


큰 눈이 돋보이는 작품, 빅 아이즈! [빅 아이즈] 전시회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전시는 [빅 아이즈: 마가렛 킨 회고전]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요,

바로 빅 아이즈를 그린 작가 ''마가렛 킨'의 삶'을 중심으로 전시가 꾸려졌기 때문입니다.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고 지켜낸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도 감동을 줍니다. 

게다가 이번 전시 작품 약 130여점은 모두 원화입니다.



이번 전시는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더 많은 여성 작가를 알고 싶다!' 하는 분,

'그림은 원화로 봐야 제 맛이지!' 하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전시정보

- 기간: 2020. 5. 13. ~ 9. 27. (공휴일 정상개관 / 매주 월요일 휴관)

- 시간: 화~일 오전 10시 ~ 오후 8:00 (입장 마감 오후 7:00)

- 장소: 서울 삼성 마이아트뮤지엄

- 요금: 일반 15000원 / 청소년 12000원 / 어린이 10000원 (📌인터파크 예매 시 10% 할인)





크고 슬픈 눈을 가진 아이와 동물.

작품 속 주인공의 큰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듭니다.


이 '빅 아이즈' 시리즈의 작가는 마가렛 킨인데요.

사실 그가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렛 킨, 눈에 주목하다

마가렛 킨은 1927년 미국 테네시 주의 내슈빌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살, 그는 수술로 청력을 잠시 잃게 됩니다.

들리지 않는 귀 대신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하죠.

그중 그가 가장 집중한 건 바로 '눈'이었습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마가렛은 그 이후로도 사람들의 '눈'을 관찰했고, 마침내 눈을 강조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렛 킨, 월터 킨을 만나다

서른 살, 그는 언변이 뛰어난 월터 킨을 만나 결혼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성을 따라서 마가렛 킨이 되죠.

당시 마가렛은 이혼을 하고 혼자 생계를 유지하며 딸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마음껏 작업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조용히 또 꾸준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 월터의 뛰어난 언변과 사업 수완을 통해 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빅 아이즈는 포스터와 엽서 등 다양한 상품으로 판매되고 큰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마가렛은 마냥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시기가, 역설적이게도 그에겐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남편 월터 킨이 빅 아이즈의 원작자가 자신이라고 말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새긴 '킨'이라는 서명은 바로 자신이라고 말이죠.


처음엔 그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는 여성 화가의 작품을 반기지 않으니, 남자인 내가 그렸다고 하면 더 잘 팔릴 거야"라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월터는 점점 호화로운 생활과 모두가 주목하는 작가의 삶에 푹 빠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거짓말은 옆에서 만류해봐도 소용이 없었죠. 되돌리기엔 너무 큰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동안 월터는 자신을 '빅 아이즈'의 원작자로 소개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마가렛도 계속해서 작품을 그리며 그 거짓말을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마가렛.

이제 작업은 더 이상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저 우울과 불안을 더 심화시킬 뿐이었습니다.





마가렛 킨, 이름을 찾기 위한 노력

마가렛은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도 합니다.

우선 새로운 화풍을 시도했습니다. 모딜리아니처럼 세로로 길게 늘어난 모습의 인물을 그리기도 하고, 클림트처럼 이전에는 거의 사용한 적 없는 금빛의 물감을 많이 사용하기도, 피카소처럼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입체주의적이고 왜곡된 얼굴을 그렸습니다. 때론, 마그리트처럼 몽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의 구성을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빅 아이즈와는 다른 새로운 화풍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새로운 서명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결혼 전 이름인 MDH(Margaret Doris Hawkins)을 작품 서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작품 속 작은 서명이 그에게는 아주 큰 의미였으니까요.




마가렛 킨, 진실을 밝히다 

1970년대, 그는 드디어 용기를 내고 월터 곁을 떠납니다. 따뜻한 기운이 넘치는 하와이에 머물며 그림을 계속 그립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빅 아이즈의 원작자는 나, 마가렛이다"라고 밝힙니다.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미술계는 물론이고 미디어도 '킨 부부(더 이상 부부는 아니었지만) 스캔들'에 주목합니다. 월터는 "마가렛은 많이 아프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라며 의혹을 부인했지만, 마가렛은 더 이상 참지 않았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싸우기 시작했죠.


1986년, 오랜 법정 다툼 끝에 "빅 아이즈의 원작자는 '마가렛'이다"라는 판결이 납니다.


이 재판이 아주 흥미진진 했습니다.

마가렛과 월터의 주장이 정반대로 엇갈렸기 때문에, 판사는 묘수를 냈습니다. 바로 '제한 시간 동안 법정에서 빅 아이즈를 그려 보라'라고 한 겁니다. 약 1시간 동안, 마가렛은 익숙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수많은 빅 아이즈를 그려 온 마가렛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그림이 바로 이 작품, <증거물 #224>입니다. 마가렛은 이런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제 그림에 내 서명을 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축복이다"


원작자가 자신이라는 걸 인정받으며, 마가렛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습니다.

하와이에 계속 머물면서 온화한 날씨, 밝은 색감을 즐기고 종교활동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다시 큰 눈이 돋보이는 사람과 동물을 그렸습니다. 똑같은 빅 아이즈이지만, 초기작에서의 불안과 우울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색채도 금빛, 노랑, 빨강, 초록 등으로 밝고 화려합니다.

작가의 감정과 상황이 작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가렛은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요.

호스피스 생활을 하고 있어 예전처럼 오랜 시간 작업을 하긴 힘들지만요.


빅 아이즈 전시에선 그녀가 최근에 그린 드로잉 작품도 원화로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인데, 자신을 부정해야 했던 시기를 어떻게 버텼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빅 아이즈 속 큰 눈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작가의 삶은 작품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걸까요?




클릭 / 10분 만에 보는 [빅아이즈: 마가렛 킨 회고전]

공셸TV 유튜브 채널에서, 해당 전시를 영상으로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