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뉴미디어 시대의 삼위일체

에디터 고석희
2019-10-01

윤제원 작가


회화의 시대는 영영 저문 것일까. 현 시대를 사는 화가들이라면 늘 마주하고 고민하는 질문이다. 뉴미디어가 대중문화의 판도를 바꾼 지금 회화의 가치는 어떤 의미와 숫자로 환산되고 평가받아야 하는지, 여기에는 이전 시대의 예술이 상상해본 적 없던 테제가 산적해 있다. 윤제원은 무엇보다 이런 변화가 몰고 온 회화 제작 방식의 구조적 측면에 집중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작가 중 하나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온라인 시대에서, 그는 미술이 미디어로 인해 재매개(Remediation)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작업물로 입증한다.


게임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유저의 체험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우리는 모두 세 개의 층위를 인식한다. 첫째, 거실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현실의 나. 둘째, 내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임 속의 컴퓨터 그래픽. 셋째, 가상 세계 속의 캐릭터가 되어 게임의 미션을 수행하는 나. 이 세 가지 층위는 동시성을 가진 하나의 액션이자 각각 뚜렷하게 독립된 상태로 존재한다. 윤제원 작가의 작업도 다르지 않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육감적인 여전사 일러스트를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 <세계의 여협도>는 하나의 이미지를 세 개의 포맷으로 변형해 전시한다. 작가가 직접 종이에 그린 수채화가 그 첫 번째요, 그것을 사진으로 촬영한 디지털 이미지가 두 번째, 그리고 이 사진 이미지를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재현해 인터넷에 배포하는 CG 이미지가 마지막이다.
“수채화와 사진 그리고 CG 이미지. 이 세 가지가 하나의 작업이에요. 이처럼 같은 이미지를 세 개로 나눈 이유는 인터넷 시대에서의 예술의 가치를 고민하기 위함이죠. 알다시피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모든 정보를 똑같이 등가시키는 특징이 있잖아요. 예술 작품도 사진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의 DPI로, 컴퓨터 안에서 0과 1이라는 이진법으로 코드화돼 변형되곤 하죠. 이렇게 형태적으로 동일한 이미지를 각 매체의 특성에 따라 전시했을 때 관객은 어떤 차이점을 느낄지 궁금했습니다.”

[세 개의 여협도] 가변설치, 혼합재료, 2015


윤 작가의 작업에 큰 영향을 준 건 재매개 이론이다. 쉽게 말해 새로운 미디어가 앞선 미디어 형식들을 차용하고 변성시킨다는 개념이다. 인터넷과 SNS 시대에 접어들며 이 같은 현상은 점점 가속화된다. 윤 작가는 이 과정에서 “회화의 오브젝트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미디어로 변형되면서 회화는 점점 대상화된다. 천문학적인 액수에 팔리는 진품 명화와 인터넷에 떠도는 복제 이미지의 가치는 얼마나 다른지, 윤 작가는 이들을 나란히 전시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기사도] 130x193cm, 캔버스에 유채 & 혼합재료, 2016


윤 작가는 계속해서 미디어 형식과 변성이 가져온 예술의 모호함을 탐구한다. [Pixel · Line · Touch]처럼, 회화의 터치(아날로그)가 컴퓨터 그래픽의 픽셀(디지털)로 변형될 때 예술의 어떤 특성과 정보가 소실되는지 묻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간단한 규칙과 조작에 따라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유저에게 숨은 메시지를 던지는 아트 게임 역시 여러 편 기획하고 개발했다. 결국 이 모든 활동은 어쩌면 윤 작가 자신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함이자 변해가는 예술의 성격을 진단하고 그 속에서 불변하는 진리를 찾기 위한 시도가 아닌가 한다.

[Pixel · Line · Touch] 73x91cm, 캔버스에 유채 & 혼합재료, 2018


문명과 기술 발달이 예술 창작에 가져온 혜택과 병폐, 윤제원 작가는 그 누구보다 그 양극단에 동일하게 민감해지려 노력한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이는 아마도 예술가의 현재를 직시하고 오직 예술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과 소명을 찾기 위한 차가운 접근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과 기술이 중재할 수 있으리란 걸 마치 처음부터 예감했던 사람처럼.
“아마 제 작품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현실화된 유토피아이자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를 지향하는 것 같아요. 세상은 변해도 다수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중요하니까요.”(윤제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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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
사진 제공 윤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