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한 발 내딛기 위한 암순응

에디터 진성훈
2019-09-24

김춘재 작가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은 저조도에서 피사체를 얼마나 뚜렷하게 잡아내는가에 의해 판별되곤 한다. 퇴근길의 어둑어둑한 하늘이든 간접 조명으로만 실내를 밝힌 카페든 노이즈 없이 깔끔하게 담아내는가에 기기의 성능이 달렸다. 하지만 어둠 그 자체를 다룬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쩌면 어둠 그 자체의 생생한 재현이 미덕일 수 있기에. 김춘재 작가는 ‘보이지 않음’에서 파생된 두려움과 불안을 견뎌내며 관통한 자신만의 방식을 드러낸다.


<어두운 길> 53X41cm, oil on canvas, 2015

 
도처에 깜깜함이 떠돈다. 하늘은 어둑하다 못해 스산하고 저 멀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 형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숲길에는 지척의 가로등 불빛만이 겨우 두 발짝 걸으면 사라질 거리만큼의 빛을 간신히 낸다. 덕분에 허리가 꺾일 듯 휘청이는 조그만 나무가 더 자세히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또 다른 가로등이 보인다. 김춘재 작가가 <어두운 길> 연작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밤늦게 작업실을 나와 걷는 길은 유난히 어둡고 외진 곳이라 띄엄띄엄 놓인 가로등에 의지해 걸어야 했어요. 그게 마치 예술가로서 저의 삶에 대한 은유 같았어요.” 2년간 작품활동을 쉬고 생계활동을 이어가며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피부로 와닿은 것이다. 작가의 길은 선배가 알려준 대로 따라갈 수도 없고, 연금과 같은 노후보장도 없으며, 당장 다음 달의 일도 예상하기 어렵다. 당시의 김춘재 작가에게 보이는 형상은 초점이 흐릿하고 불안정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나뭇잎이 섬세하고 정교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뭉개져 있다.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한 청년처럼.


<어두운 길2> 156x112cm, oil on cavas, 2017


그는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풍경 속에서 조우한 빛조차 환영은 아닌지 의심한다. 권위 있는 상을 받아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개인전을 열어봐도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김춘재 작가는 잘못 찍은 사진에 그럴듯한 필터를 씌우듯 어둠에 색을 뿌렸다. 하지만 빛이 화려한 색을 띨수록 오히려 어둠을 견디지 못하는 애처로운 움직임처럼 보일 뿐이다. 마음이 허공에 맴돌수록 더 반짝이는 옷을 사고, 더 비싼 음식을 먹고, 더 독한 술에 취하듯이. 캔버스의 절반가량을 덮은 진한 푸름과 붉음이 어둠을 몰아낸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존재감을 강하게 만드는 이유다. <어두운 길>에서 내적 긴장과 외적 화려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례한다.

<어두운 길> 193.9X130.3cm, oil on cavas, 2016


물론 이 모든 작업은 개인 무의식의 무작위적 재현이 아닌, 작가로서 의도한 형상이다. “안에서 어슴푸레 빛나고 있는 환영들은 우리 모두가 가진 환상을 대변해요” 김 작가는 환상이 그저 환상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쨌든 좋아 보이는’ 저 환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기어코 그 이면을 관찰한다. 공원 곳곳에 배치된 동물 조형물은 평화롭고 친근한 장식이지만, 밤이 되면 가로등 조명이 조형물에서 동물의 무해함을 배제하고 위협적인 실루엣만 남겨 주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것. 그가 바라본 판타지의 실체다.

<동물의 밤> 193.9X104cm, oil on canvas, 2016


“가공된 세계의 이면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작업은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에요” 일상성과 멀어지면 으레 두 가지 이미지가 동시에 덧씌워진다. 판타지와 두려움. 대개 여행은 동경의 대상으로, 직업인으로서의 미래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되듯이. 작가는 여기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김 작가가 그랬듯이 어둠과 그 안에 들어찬 어지러운 마음을 직시하는 일이 먼저일지 모른다. 어둠에 압도되지 않고 길을 걷기 위해선, 눈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빛의 감도에 적응하는 동안 마음은 이 모호함을 끌어안아야 할 테니까.




에디터 진성훈
sh.jin@gongshall.com
사진 김춘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