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이토록 붉고 쓸쓸한 계절

에디터 고석희
2019-09-23

가을의 인상을 담은 명화 4점


완연한 가을이다. 하늘은 어느 때보다 높고 파랗고, 열린 창문에는 선선한 바람이 밀려든다. 명화 속에 담긴 가을은 어떤 풍경일까. 구상과 추상을 떠나 네 명의 작가들이 담은 가을날의 정취를 여기 모았다.




<바바리아의 가을>
Autumn in Bavaria


작가 바실리 칸딘스키

제작연도 1908년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러시아 화가 칸딘스키. <바바리아의 가을>은 비교적 구상에 가까운 작업이지만, 기법 자체는 꽤 칸딘스키스럽다. 사각 형태로 널찍하게 눌러찍은 붓터치만으로도 가을날의 고즈넉한 색과 분위기를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색으로써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생전의 칸딘스키답게, 조금씩 다른 크기로 붓점을 찍어 화폭 상에 은근한 운율을 부여한 점도 흥미롭다. 햇살에 빛나는 도로와 나무 그늘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대비,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에서 가을의 운치가 물씬하다. 




<가을의 리듬(넘버 30)>
Autumn Rhythm(Number 30)


작가 잭슨 폴록

제작연도 1950년


가을을 추상화한다면 어떤 형상일까. 미국의 전설적인 추상화가 잭슨 폴록이 그 답을 가지고 있다. 바닥에 펼친 캔버스 천에 물감을 휘갈기고 흩뿌리면서 작업하는 자신의 시그니처 기법 '액션 페인팅'을 통해 폴록은 가을이 품은 격렬하고 충만한 에너지를 표현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한껏 더 휘져어논 듯 어지럽게 겹치고 꼬인 선들, 어느 한 영역으로 수렴되지 않지만 완벽하게 통제된 불순한 색들은 마치 잔잔한 가을 풍경 앞에서 더욱 감상적이고 격정적인 형태로 변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1차적으로는 고독과 공허감 등 가을이 갖는 부정적 심상을 떠올리게 하지만, 볼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 역설적인 매력을 가진 작품.




<월드게이트 숲>
Woldgate Woods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제작연도 2008년


호크니와 숲은 퍽 인연이 깊다. 노년에 접어들며 주무대였던 뉴욕에서 고향인 영국 요크셔로 돌아온 그는 마치 모네처럼 꾸준히 숲속에 나가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가 2008년 그린 <월드게이트 숲> 연작 중 가을의 모습은 가을이 숲의 전체적인 색과 인상을 천천히 바꿔가는 찰나를 우아하면서도 시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진행될수록 푸릇한 초목이 어느덧 붉은 단풍과 노란 낙엽으로 물들어가는 연출을 통해 가을의 절정으로 향하는 숲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가을의 농부들>
Peasant in Autumn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제작연도 18~19세기 추정


가을을 마냥 낭만적이고 감상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농부들이다. 그들에게 가을은 일년 동안의 결실을 수확하는 가장 중요한 계절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우키요에(일본의 풍속화) 화가임이 틀림없을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담아낸 일본의 가을 풍경은 서양 화가의 그것보다 사뭇 분주하다. 붉게 노을지는 하늘, 잘 익은 곡식을 배경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에 바쁜 농부들의 조급한 심리가 잘 묻어나있다. 마치 현장을 스냅사진으로 촬영한 듯, 운동감이 느껴지는 인물들의 동작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