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혼돈의 해부학

에디터 고석희
2019-09-17

문기전 작가


문기전 작가는 오감의 데이터를 통해 자신의 정신과 내면을 탐구한다. 눈과 귀, 코와 혀와 마음이 측정하고 저장해둔 영겁의 정보들로. 기억 속에 쌓여 무뎌지고 풍화된 온갖 경험과 감각들이 캔버스 위에서 다시 형체로 재생된다. 그림은 특별한 기억을 의식의 중앙에 초청하는 초상화요, 체화되지 못하고 무성하게 우거진 무의식의 가지들을 담은 풍경화다. 그 속을 읽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정직하게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 작가의 이 불온한 회화들은 입자물리학의 기본 개념에서 힌트를 얻었다. “인간을 포함해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은 결국 수많은 입자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남녀의 신체, 나무와 수풀, 자연물과 인공물이 복잡하게 얽혀든 이 그림은 흡사 서로 호환되지 않는 기관들이 한 몸에 달린 듯한 광경이다. 칸딘스키의 추상화에 드러나는 색과 형태(미술)에서 미묘한 리듬감(음악)이 느껴지듯, 다분히 과학적인 착상을 미술로 변환한 시도가 흥미롭다. 마치 작가의 좌뇌가 사고했던 공식을 우뇌에서 적용하는, 전환의 유희가 거기 있다. 

“사람의 눈은 불과 1초 안에 수십 장의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죠. 아마 우리의 뇌 속엔 지난 수십년의 정보가 저장돼 있을 겁니다. 단순히 시각 정보 외에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방대한 정보가 들어있을 거에요.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죠. 그 정보들을 하나씩 종합해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piece 11> 23x34cm, 판화지 위에 연필


<Q-piece 9> 23x34cm, 판화지 위에 연필


꿈결에서도 선연한 남모를 기억들과 매번 집요하게 따라붙는 익숙한 기운들. 작가는 그 풍경을 정리하고 도열하기보다 그 모든 요소가 어지럽게 존재하는 혼란한 상태를 그대로 화면에 수집한다. 편리하고 익숙하게 슥슥 그려낸, 연필 드로잉의 스산하고 정교한 궤적으로. 자신의 정신 세계 곳곳에 쌓인 정보를 토대로 작가는 여러 점의 <Q-피스>, 즉 양자의 파편(Quantum Piece)을 그린다. “육체와 정신을 입자로 분해하고 해체한다면 그 속에 어떤 정보가 담겨 있을까” 고민하며 만든 작업이다. 이런 Q-피스 각각은 하나의 캔버스에서 만나 “기억 속에 하나하나 쌓인 스틸컷들을 모두 종합한” 풍경화 <관계풍경>으로 완성된다. 과거의 특정한 지점에서 태어났지만 현재와 미래에도 여전히 막대한 지분과 영향을 쥐고서 우리를 흔드는 기억들. 오직 4차원 세계에서만 온전해질 기억의 상을 인간은 결코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겠지만- 어쩌면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무형의 기억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문 작가는 생각했는지 모른다.


<관계풍경 Q-L-R 11> 90x150cm, 판화지 위에 연필, 2019


<관계풍경 Q-L-R 3> 100x100cm, 판화지 위에 연필, 2019


<관계풍경>은 흡사 살바도르 달리의 발상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다. 문 작가가 “물리적 육체를 해체한 뒤 얻은 정보를 새로운 인체로 재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듯, 마치 여러 사람의 인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어우러진 그 풍경은 관계의 병합이라기보다 파열 혹은 붕괴에 가까운 장면을 연출한다. 그것은 오히려 유쾌하지 않은 교배이자 기이한 공존에 가깝다. 그림 속의 불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림을 이해할 실마리는 어차피 작가의 내면에 있는데 말이다. 작품의 의미만큼이나 작가의 속을 가늠해야 하는 숙제가, 또 하나 주어진다. 


<인체산수 Q-L-A 7> 100x60cm, 판화지 위에 연필, 2018


<인체산수 Q-L-A 4> 100x30cm, 판화지 위에 연필, 2018


그런 의미에서 <유기적 산수> 연작은 작가 본인의 심리를 알려주는 일종의 병풍화다. “작가가 보는 자연 풍경을 내면에 저장된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재조합시킨” 이 산수화는 동양화를 전공한 문 작가의 배경이 잘 묻어나는 작품이다. 서양화의 세밀한 부분 묘사, 동양화 특유의 단일 시점이 한 그림에서 만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법이 한 그림에 혼재하듯 작가 역시 삶과 죽음, 세상과 자신에 대한 여러 쌍의 질문을 던진다. 여전히 하나의 몸과 피를 공유하듯,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형태로써. “이 세상에 대한 질문, 나에 대한 대면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현실은 그야말로 혼돈의 장이죠. 이처럼 '심리적 회화'를 작업하며 저는 비로소 현실과 만나고, 비현실을 상상하며 마침내 기억들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모든 요소가 감상자의 동의나 이해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듯, 예술가 역시 이 도상들의 의미를 쉽게 해설하거나 개념화시킬 의무는 없다. 어차피 개개인은 저마다 다르고 은밀한 경험들을 축적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늘 자신의 내면에서 반갑지 않은 것들과 마주하고 원치 않는 목소리를 계속해서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 작가는 해묵은 고뇌와 해갈되지 못한 욕망, 짝이 맞지 않는 기억의 퍼즐 조각을 반복해서 화폭에 담는다. 그 풍경들이 걸어오는 말을 번역하기란 여간 녹록지 않다.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

사진 제공 문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