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육체와 정신이 맞은 고결한 최후

에디터 고석희
2019-09-11

결정적 구도 ④/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그림은 무수한 시각 이미지의 원천이다. 우리가 턱을 괸 사람을 보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영화 '나홀로 집에’ 포스터에서 뭉크의 <절규>를 떠올리듯, 명화 속 구도는 이제 하나의 밈(Meme)으로 자리잡았다. <결정적 구도> 코너에서는 후대 미술은 물론 영화, 광고 등 대중매체에도 엄청난 영감을 끼친 불멸의 구도를 하나씩 짚어본다.




<마라의 죽음>
The Death of Marat


165×128cm, 캔버스에 유채,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관 소장


작가 자크 루이 다비드

제작연도 1793년


욕조 밖으로 팔을 축 늘어뜨린 사내. 생기를 잃고 늘어진 그의 육신은 그 정신과 신념마저 함께 스러졌음을 슬프게 암시한다. 가장 안심했을 법한 공간에서 살해당한 그의 표정은 마치 잠을 자는 듯 평화롭다. 마치 대의를 안고 희생한 순교자처럼 아름다운 죽음. 범행이 끝나자 바닥에 뒹구는 피 묻은 칼과 대조적으로, 남자의 힘 없는 손에는 여전히 깃펜이 들려 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가 남긴 유지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에게든 계승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마라의 죽음>은 로베스피에르, 조르주 당통과 더불어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계 중추에 섰던 정치인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장 폴 마라(1743~1793)의 죽음을 다룬다. 하층민을 두둔하고 급진적인 사회 개혁을 부르짖던 그는 만성적인 피부병이 도진 7월 여름 목욕 도중 반대파 추종자였던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이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림은 프랑스 혁명사의 가장 유명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 직후, 그 현장을 담담하게 그렸다.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이 걸작은 후대에 이르러 그림의 주인공인 장 폴 마라보다 유명해졌다. 비단 영웅 혹은 순교자의 고결한 죽음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담아낸 예술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그림은 실제 귀족과 왕당파를 잔혹하게 숙청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며 당시 공포 정치를 이끌었던 냉혹한 정치인을 미화했다는 논란에 수차례 휩싸이곤 했다. 생전 마라와 친분이 있었던 화가 다비드가 의도적으로 친구의 최후를 숭고하게 묘사했다는 주장도 있다. 같은 사건을 그린 다른 화가들의 초점은 사뭇 다르다. 장 자크 오에르의 <1793년 7월 13일, 마라의 죽음>(1794), 폴 자크 에메 보드리의 <샤를로트 코르데>(1860), 에드바르 뭉크의 <마라의 죽음>은 분명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각각 가해자인 샤를로트 코르데의 감정(허탈하거나 혹은 결연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마라의 외모를 아름답게 묘사한 것 역시 공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일단 기록에 따르면 마라는 그림만큼 외모가 뛰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망 당시 지독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에드바르 뭉크 <마라의 죽음>, 1907


이런 유명세 덕분에,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현대 미술과 대중문화에 종종 인용되곤 했다. 행위 예술가 로버트 윌슨은 2013년 세계적인 톱가수 레이디 가가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원작을 비디오 설치로 재현한 작품(하단 영상)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처음 선보였다. 남성인 원작의 마라를 여성으로 대체하는 젠더 스왑으로 화제가 된 이 작품은 빛의 변화에 맞춰 명화의 한 장면을 재연한 레이디 가가의 상반신을 애잔하고 성스럽게 조명했다.


아이프레임
고결한 존재에게 찾아든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최후. 원작에서 느껴지는 이 묘한 정서는 후대에 나온 영화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거장 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배리 린든'(1975)에서 <마라의 죽음>의 구도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을 선보였고, 영화 '어바웃 슈미트'(2002)는 욕조에서 편지를 쓰다 잠든 주인공 슈미트(잭 니콜슨)의 모습으로 은근슬쩍 오마주를 바쳤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의 한 장면


아주 특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재현된 적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웨이스트 랜드'(2010)는 브라질의 대형 쓰레기 매립지에서 생계를 해결하는 하층민들이 쓰레기를 이용해 <마라의 죽음>을 완성하며 예술을 통해 삶을 바꾸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다큐멘터리 '웨이스트 랜드'에서 <마라의 죽음>을 쓰레기로 재구성한 풍경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