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전시된 시선, 마주보는 눈

에디터 고석희
2019-09-05

김용석 작가


이 눈빛들은 함부로 약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바닥이자 무장이 없는 본심이라고. 거기엔 좀 더 복잡한 침묵과, 정밀한 교란이 있다. 우리가 상대의 눈빛에서 읽어냈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을, 이 그림들은 품고 또 발한다. 김용석 작가는 정말로 그런 눈을 그린다. 영혼이 드나드는 통로이자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라지만, 가끔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그윽해서 온통 알 수 없어진 것들을. 


'사실적'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모호할 뿐더러 종종 상대적이다. 눈과 귀, 사진과 그림이 담아내는 사실이 각각 다르듯. 눈에 보이는 것 그대로는 물론, 누군가가 느끼고 이해한 것 역시 나름의 사실일 수도 있다. 아마 김용석 작가는 처음부터 그 중 어느 하나로는 사실 그대로의 사실을 묘사할 수 없을 거라 여겨 온 듯하다. 투명하지만 불온한 사람의 눈. 그속에 보이는 사실과 보이지 않는 사실 모두를 건져내려는 이유도 거기 닿아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 눈빛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싶은, 선택된 사람들의 눈을 사냥해요. 눈을 그렸다기보다는 눈을 중심으로 한 시선을 그렸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겁니다.“


[The eye] 77x97cm, 캔버스에 유채, 2011

그의 그림은 사람의 눈을 다룬다. 러시아에서 미술을 공부했던 김 작가는 언어도 문자도 서로 다른 이들의 "공통된 하나의 소통 수단"으로써 사람의 눈빛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시선이 출발하는 원점으로써의 눈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시선이 주행하는 방향과 세기, 눈동자가 함유한 물기와 감정을 두루 포함한 것이다. 그 두 점과 선이 한 화면에 어울려 대상의 의도를 결정짓는다. 우리가 누군가의 눈빛에서 읽어낸 일련의 신호 혹은 징후들, 즉 “안구를 감싸고 있는 안륜근의 움직임, 피부 조직의 색상변화, 그리고 크고 작은 떨림들”은 눈빛에 담긴 정보량이 꽤 상당하다는 걸 되레 상기시킨다. 우리가 가늠하는 것 그 이상으로.

“사람들은 언어와 문자가 서로 다르죠. 공통된 하나의 의사소통이 있다면 눈빛이라고 생각했어요. 신체기관으로써 눈의 기본적인 역할은 '보는 것'이지만,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전달하는 언어의 기능도 있으니까요.”

  

[The eye] 77x180cm, 캔버스에 유채, 2011

'극사실주의'라는 편리한 말로 묶이곤 하지만, 결국 작가가 표현하려는 건 실사에 필적하는 정교한 묘사가 아닌 오로지 인물의 초상이다. 주로 눈을 부각시켜 그린 'The Eye' 연작들을 두고 “기본적으로는 부분초상화”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The Eye'와 함께 병행했던 누드화 연작 'The Body'에서도 작가의 고집과 철학이 진하게 드러난다. 미학보다는 해부학에 가까울 만큼 정밀하게 묘사한, 주름처럼 몸에 남은 생의 흔적이 몹시 적나라하고도 처연하다. 당연히 눈도 예외는 아니다.
“흔히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들 해요. 간혹 진실이 아니라 거짓을 말하는 눈도 있겠지만, 그 거짓마저 표현하는 신체가 경이롭죠. 나의 소재(눈)는 항상 새로운 표정들을, 새로운 이야기들을 내게 그려달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요.”

  

[The eye] 97x162cm, 캔버스에 유채, 2012

어떤 수고로움이 이 그림들을 가능케 할까. 김 작가의 첫 작업은 대상을 촬영한 사진으로부터 출발해, 그 결핍을 메움으로써 끝난다. 길고 복잡한 공정을 거쳐 사진이 캡처한 모델의 초상은 원본의 사실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사진의 픽셀은 붓터치로 대체되고, 렌즈로는 포착되지 않는 디테일을 보강한다. “색채에 민감한 화가라면 사진에 나온 그대로를 모사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요. 여남은 리얼리티는 회화를 통해 살려낼 수밖에 없어요. 지난한 노동이 만들어내는 미학이죠.”


사실의 극단을 추구하는 것만이 김 작가가 가닿으려는 지점은 아니다. 서양화의 드로잉에 동양화의 터치를 혼용하거나, 완벽한 형태에서 일부러 탈피하려 사용하면 안되는 구도에 대한 도전적인 실험도 이어진다.

  

[The eye] 162x130.3cm, 캔버스에 유채, 2012


그의 작품이 걸린 갤러리에 서면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갤러리는 그림들의 말없는 시선으로 둘러쌓여 있고, 그것들이 가진 불편함과 신비로움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눈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뜻밖의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밝던 것은 어둡게, 붉은 줄 알았던 것이 푸르게도 보이고, 덤덤한 줄 알았던 것이 슬프게도 보인다. 작가가 담는 정수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피사체에게 존재할 수도, 그린 이가 부여한 것일지도 모르는 어떤 아우라가 유령처럼 그림 앞을 서성인다.

“시선을 그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관람객만이 제 그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림 역시 관람객을 바라보는 것일 수 있겠다고. 정면으로 응시하기도, 곁눈으로 흘겨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서 관람객을 거부하기도 하죠. 눈을 그리는 이유는 동물원 철창 속의 동물들처럼 작품이 감상의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를 바라보는 기회를 주고 싶어서일지 몰라요.”


[The eye] 97x130.3cm, 캔버스에 유채, 2011

바닥이 없는 말과 생각을 품은 연못. 그 속에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오늘도 캔버스라는 창문을 통해 그림 앞에 선 이들을 물끄러미 마주보고 있는지 모른다. 그동안에도 작가는 수많은 대상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고, 거기서 어떤 자잘한 소망과 진의를 읽어내기를 바랄 것이다. 아득한 심우주에서 꺼지지 않은 별빛 하나를 찾아내려는 심정으로.


[The eye] 60x162.3cm, 캔버스에 유채, 2011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
사진 제공 김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