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이미지 속의 이미지

에디터 고석희
2019-09-03

결정적 구도 ③/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그림은 무수한 시각 이미지의 원천이다. 우리가 턱을 괸 사람을 보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영화 '나홀로 집에’ 포스터에서 뭉크의 <절규>를 떠올리듯, 명화 속 구도는 이제 하나의 밈(Meme)으로 자리잡았다. <결정적 구도> 코너에서는 후대 미술은 물론 영화, 광고 등 대중매체에도 엄청난 영감을 끼친 불멸의 구도를 하나씩 짚어본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Arnolfini Portrait


82cm x 60cm, 오크 화판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작가 얀 반 에이크
제작연도 1434년

그림 속에선 한 커플의 결혼식이 한창이다. '아르놀피니'로 알려진 예복을 입은 신랑은 엄숙하게 손바닥을 하늘로 세운 채 혼인 서약을 하는 중이고, 만삭의 신부는 부드럽게 배를 감싸쥔 채 수줍은 눈을 내리깔고 있다. 서로 꼭 잡은 손뿐만 아니라 집 안의 모든 사물들이 두 사람의 신성한 결합을 공증한다. 예컨대 샹들리에를 밝히는 유일한 촛불이 엄숙한 맹세를, 강아지가 부부 간의 순정을, 가지런히 벗은 신발은 이 결혼식이 신성한 곳에서 치뤄지고 있다는 걸 상징한다. 15세기 네덜란드의 미술 거장 얀 반 에이크는 이 그림을 남기면서 결혼을 보증하는 증인의 역할마저 겸한다.


그림 속 거울을 확대한 이미지


무엇보다 이 작품이 유명세를 얻은 데는 부부 뒤에 있는 작은 원반 거울(상단 이미지)의 공이 크다. 놀랍게도 거울 속에는 부부의 모습을 그리는 화가 자신을 비롯한 두 남자가 작게 그려져 있다. 바로 이것이 이 그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 하나의 이미지 속에 반복되는 이미지, '미장 아빔'(Mise En Abyme)이다. 이 그림은 200여 년 후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1656년, 아래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


거울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맥은 같지만, <시녀들>의 미장 아빔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는 조금 다르다. 궁정 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캔버스 왼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중앙에 위치한 거울 속에는 왕과 왕비의 모습이 있다. 즉 그림은 왕과 왕비가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이자, 화가가 그들을 그리고 있는 현장을 묘사한 작품이다. 얀 반 에이크의 걸작에서 힌트를 얻은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한 번 더 비틀어 응용한 결과다.

이처럼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의 혁신적인 구도는 벨라스케스뿐 아니라 후대의 여러 화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선사했다. 그중엔 아예 이 작품을 대놓고 유사하게 그림으로서 오마주를 바치는 모작도 많았다. 통통한 인물화로 유명한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 역시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작을 해석했고, 중국 현대미술가 시 구오웨이(Shi Guowei) 역시 중국 인민 커플이 등장하는 현지화된 버전을 내놓기도 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얀 반 에이크 모작)


당연한 결과겠지만, 20세기 들어 이 작품의 구도는 광고, 영화, 만화 등 시각 매체에서 단골로 패러디되곤 했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2004~2012)은 오프닝 타이틀에서 이 그림을 전면으로 활용해 원작과 달리 가정에 소홀한 남편의 모습을 재치있게 묘사했다. 영국 가구 회사 Habitat은 이 그림을 활용한 재치 있는 지면 광고(하단 이미지)로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패러디한 Habitat의 지면 광고


단순한 이미지의 차원을 넘어,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드러난 미장아빔은 대중문화의 서사적 측면에도 영향을 끼쳤다. 영화, 소설 등에서 사진, 거울, 창문, 홍채 따위에 비친 반상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설정은 어느 정도 이 그림이 제시했던 '이미지 속의 이미지'에 빚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욕망'(1966)에서 필름을 현상하던 사진작가가 사진 속에서 살인 현장을 발견하거나,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사진 속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통해 도망친 안드로이드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걸작은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 삶과 생각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영화 '욕망'의 한 장면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