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혁명의 불씨를 품은 과격한 희망

에디터 고석희
2019-08-27

결정적 구도 ②/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은 무수한 시각 이미지의 원천이다. 우리가 턱을 괸 사람을 보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영화 '나홀로 집에’ 포스터에서 뭉크의 <절규>를 떠올리듯, 명화 속 구도는 이제 하나의 밈(Meme)으로 자리잡았다. <결정적 구도> 코너에서는 후대 미술은 물론 영화, 광고 등 대중매체에도 엄청난 영감을 끼친 불멸의 구도를 하나씩 짚어본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iberty Leading the People

260 x 325cm,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작가 외젠 들라크루아
제작연도 1830년

혁명은 이미 반쯤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민중과 군인의 시체가 함께 산을 이룬 전투에서 불길처럼 격렬하게 전진하는 군중들. 죽음을 각오한 투지가 담긴 상기된 표정, 총검을 높이 든 팔뚝에 드러난 의지가 결연하다. 이들을 이끄는 여성은 바로 자유의 여신. '리베르타스'라고 알려진 로마 신화의 여신 혹은 자유와 이성을 여성화한 프랑스의 상징 '마리안느'다. 그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상의가 벗겨져 가슴이 드러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중을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운다. 무려 여신이 돕는 이 싸움은 아무리 봐도 지기 힘든 싸움처럼 보인다. 화폭 속에 싸울 수 있는 적은 없고, 여신의 편에서 그 뒤를 따르는 군중의 패기 성난 파도처럼 거세다. 전투의 기세는 이미 민중에게로 넘어온 것처럼 보이고, 시체의 산을 쌓고 넘으면 정말로 공명정대한 세상이 기다릴 것만 같다. 여신은 신화 속의 고고한 용모가 아닌, 허름한 서민의 옷을 입고 가장 끔찍하고 치열하고 인간의 현장에서 함께 싸운다. 그는 기품이 아닌 행동으로 그림 속 군중과 그림을 보는 이를 압도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사진=뮤지컬 레미제라블 홈페이지 ⓒMatthew Murphy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남긴 이 작품은 흔히 프랑스 왕정시대의 몰락을 가져온 프랑스 대혁명(1789~1794년)을 묘사한 것으로 종종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1830년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이 샤를 10세의 전제 정치에 맞서 정치 개혁을 외치며 일으킨 '7월 혁명'이 배경이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출간한 유명 소설 '레미제라블' 역시 이 7월 배경을 소재로 한 것으로 유명한데, 소설에 등장하는 어린 소년 캐릭터 가브로슈가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소년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진 뮤지컬 '레미제라블' 또한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 풍기는 결기와 활력을 이어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선전 포스터(2001년, 림광주)

그림은 들라크루아가 7월 혁명에 품은 낭만적인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 프랑스 시대 배경을 모르는 관객이라고 해도 어딘가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지게 만드는, 오묘한 마력을 지녔다. 폭군이 몰락하고 자유와 평등의 기치가 바로 서는 역사의 드라마틱한 현장을 역동적이고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 덕분이다. 총검을 높이 쳐든 자세는 뉴욕의 대표적 랜드마크인 자유의 여신상(횃불을 들고 있다는 면이 다르긴 하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 그림의 중요한 주제인 자유를 배격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조차 이 구도는 자주 활용돼 왔다. 공산주의 정권이 국민을 선동하고 당의 이념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선전용 포스터가 그 좋은 사례다. 집단을 하나로 묶는 가치(자유의 여신)와 그 주변으로 뭉친 군중들이 만들어내는 삼각 구도, 구성원들의 굳건한 의지를 다시 확인하려는 듯 뒤돌아보는 리더의 얼굴이 그렇다.

콜드플레이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앨범 커버


대중문화와 매체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와 패러디를 활발하게 해왔다. 가장 유명한 용례는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앨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의 커버 이미지. 거칠고도 힘찬 필치로 써진 타이틀을 제외하면 들라크루아의 원작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다. 특히 해당 앨범에 실린 곡 'Viva La Vida'는 전 세계 음악 팬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데, 이 곡의 가사 역시 숙청을 앞둔 전제 군주의 허탈한 심경을 담고 있기에 이 그림과도 묘하게 쌍을 이룬다.

영화 '원더 우먼'의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최근 영화들에서도 이 작품에 영감을 받은 부분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원더 우먼'(2017)에서는 1차 세계대전의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독일군에 맞서 수세에 몰린 영국군을 이끄는 원더 우먼의 모습에서 들라크루아의 이 그림이 겹쳐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전쟁의 최전선에 앞장서서 병사들을 진두지휘한다는 것뿐 아니라, 아군에게 승리에 대한 명분과 투지를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힘없는 개인이라도 함께 뭉치면 정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믿음을 품게 하는 예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단순히 역사 속의 한 지점을 묘사한 것 이상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에디터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