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젊은 고민을 위한 그 여름의 갤러리

에디터 고석희
조회수 1435

<아시아프 2019> 관람기


이만한 등용문도 흔치 않다. 7월 23일(화)~8월 18일(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리는 '아시아프 2019'(ASYAAF·Asian Students and Young Artists Art Festival·아시아 대학생 청년 작가 미술 축제)’. 국내의 숨은 청년 작가들을 발굴하는 대표적 전시다. 올해 12회째를 맞았고, 지난해까지 35만명의 누적 관람객이 이곳을 다녀갔다. 날씨가 무더운 어느 오후, 1부 행사가 한창인 아시아프를 찾았다. 평일이라 장내는 한산했지만, 곳곳에서 여유롭게 전시를 감상하는 관람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작품 앞에서 적지않은 시간을 서성이다 느린 걸음을 떼는 그 얼굴들엔 기분좋은 놀라움과 미세한 여운이 깃들었다.



아시아프 2019 전시장 내부 전경. 곳곳에 작품 해설 및 전시장 안내를 돕는 아트 매니저들이 배치돼 있다.


아시아프 전시장이 마련된 DDP 디자인둘레길은 꽤 이색적이다. 전시 코스는 배움터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로, 나선형 복도를 쭉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다. 경사로 중앙에 ㄱ,ㄴ자 형태의 가벽을 세워 전시 공간을 구성하고, SAM(Student Art Manage)으로 불리는 학생 도슨트들을 곳곳에 배치해 작품 해설을 지원하도록 했다. 경사로를 거슬러 오르는 코스가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서둘지 않고 한숨 돌리며 여유 있게 그림을 관람하기엔 알맞은 동선이었다.

눈으로만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쉬워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아가는 관람객도 많았다.


고희경 작가의 <수면 I>(왼쪽), <수면 II>.


올해 아시아프 2019엔 6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물은 1000여 점에 달한다. 회화와 조각, 설치, 미디어 아트를 아우르지만, 올해는 특별히 디자인 부문을 신설, 전시의 외연을 한층 넓혔다.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공예 전시물이 기존에 비해 부쩍 늘어난 듯한 인상도 받았다.

윤세연 작가의 <늘>(왼쪽), <...이에게>.


흥미롭게 보이는 입체 작품들도 관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일본 작가 아키라 후지모토의 <결합된_그릇, 그릇>.


600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대형 전시인 만큼 올해 아시아프 2019의 성격이나 경향을 어느 하나로 특정하기엔 당연히 무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모인 까닭에, 저마다 오롯한 개성과 기량을 뽐내는 작품들도 일부 공통적인 기류를 공유하는 법. 올해 1부 전시에서 가장 확연하게 느껴졌던 주제는 청년 작가들이 바라 본 ‘뉴트로’(New-tro) 현상이다. 한복 투어를 비롯해 문갑을 현대적으로 구성하거나, 장롱 문을 수놓은 화려한 네온사인 등 우리나라 전통과 SNS 문화가 혼재된 이질적인 조합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체화시키려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한지, 자개 등 전통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나희 작가의 <共存 no.7-뒤돌아보다>(중앙), <共存 no.5-같은 곳을 보다>(오른쪽).


박보미 작가의 <잔상_문갑 02>와 <잔상_사이드테이블 02>(아래).


엄기성 작가의 <맥스 샹들리에>(왼쪽 위)와 <빅버드>(왼쪽 아래>.


전시를 둘러보다 보니 작품 옆에 붙은 빨간 원형 스티커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본 작품이 판매됐다는 걸 알리는 스티커다. 지금껏 역대 아시아프에서 판매된 작품은 대략 7200여 점. 아마 기성 작가의 작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참신한 작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대다수의 작품에 스티커가 붙어있던 걸 기억하면, 올해도 꽤 여러 작품들이 판매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 알릴 기회가 드문 신진 작가로서는 여간 고무적인 기회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의도한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소장하길 원하는 수요자를 찾아주는 건 참여작가들에게 출품 이상의 의미로 남지 않을까.

이주리 작가의 <1994>(왼쪽), <1989>(오른쪽 위).

최봉석 작가의 <안보이는 줄>(왼쪽), <쌓여가는 중>(오른쪽).


전시장 한 켠에는 미디어 아트를 위한 독립적인 부스도 마련돼 있었다.


1부를 관람하면서 가장 와닿았던 것 하나. 다름아닌 청년 작가만이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는 ‘청춘다움’이란 인장이다. 올해 전시에 참여한 작가 600여 명 가운데 421명이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인 만큼, 전시장엔 젊은 세대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바가 치열하게 녹아든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스마트폰과 SNS, 먹방, 팬클럽, 인기 캐릭터 등 단지 2030 또래 세대에게 익숙한 기호와 생활 양식을 뛰어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선과 관심사, 문제의식과 세계관을 관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런 작업들 말이다. 기표가 기의를 넘어서는 이 시대에 아시아프 2019에서 만난 작가들의 작업은 조금 투박하고 직설적이라도 가장 친근하고 진솔한 태도로 관람객을 맞는다. 일부러 거창한 언어를 지어 수식하지 않더라도, 보는 이와 나란히 서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인사를 건네는 방식으로.

신원비 작가의 <2019년 3월>.


김혜정 작가의 <현대인의 초상>.


아시아프 2019의 1부는 지난 8월 3일 막을 내렸다. 이어서 2부가 8월 18일까지 전시 예정이다. 향후 미술계를 이끌고 지탱해 갈 청년 작가들의 재기 넘치는 창조성을 응원할 곳을 찾고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곳을 찾길 권한다.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할 때, 확신은 가장 단단해진다.

허순용 작가의 <Memory II>(오른쪽).



에디터, 사진 고석희
seokhee@gongsh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