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하늘이 파래서 그냥 걸었어

에디터 진성훈
조회수 1251

권현경 작가



[Midday] 90.9x72.7cm, Oil on canvas, 2018


파랑은 대개 자유를 상징하고, 청량한 이미지를 주는 밝은색이다. 동시에 영어로 파랑(Blue)은 우울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권현경 작가는 하늘을 피사체 삼아 파랑의 아이러니함을 그려낸다. 아무리 희망찬 풍경을 봐도 마음이 갑갑한 시절에는 그 아름다움이 와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그시 바라보듯이.

 
세로로 긴 캔버스를 가득 채운 하늘은 언뜻 빈 그림처럼 보인다. 캔버스에 바짝 다가가 가장 위에서부터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한참을 파란색에 머물게 된다. 절반을 훌쩍 넘고 나서야 초점이 나간 듯 경계선이 흐릿한 나무와 건물이 슬며시 등장한다. 수직의 하늘이 전경으로 등장하고, 다른 피사체가 조연처럼 깔리는 구도가 시원시원한 동시에 새롭다. 우리의 눈은 높은 곳을 보면서 걷기보다 앞과 옆의 사물에 집중하는 2차원의 시선에 익숙해져 있으니.

 

[Midday] 100x100cm, Oil on canvas, 2018


같은 장소, 같은 날씨의 하늘도 마음속 상념에 따라 대비가 강한 사진처럼 쨍하거나 혹은 탁한 먼지가 낀 듯 이지러진 모습을 띤다. 빈 하늘은 온전히 비어있기에 권 작가의 설명처럼 “주관성이 가미된 색채들과 카메라 필터를 사용한 것 같은 색감”을 덧입히기 적합한 대상물이다. 권현경 작가는 갖가지 형태를 만드는 구름을 덜어내고 오직 색이 주는 감상에만 집중한다.

 

[Midday] 40.9x31.8cm, Oil on canvas, 2018 


개인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나아가 무심하게 둥실 떠 있는 하늘이 되려 권 작가에게는 감성을 자극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에는 그 안에 몰입하느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정리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왜 이 일을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 채 주어진 일만 하다가 하루를 다 쓴 뒤의 허무함이나,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대화를 나누는 외로움 같은 감각은 ‘열심’으로 그 순간을 채울 당시에는 대강 뭉개져 있다.
권 작가에겐 그 순간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다. “티 없이 맑은 풍경 속에서 오히려 적막함과 홀로 붕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어요.” 그는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고, 점유한다.

 [Midday] 100x100cm, Oil on canvas, 2018 


연작 ‘Midday’의 시간은 그 제목처럼 정오에 맞춰져 있다. 하루 중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순간. 혹은 그림자와 사람이 가장 가깝게 맞닿는 순간이다. 어쩌면 권 작가에게 정오는 자신을 가장 투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이 아니었을까.
“맑은 풍경을 캔버스에 담으면서도 공허함 혹은 외로움과 같은 이면의 감성까지 묻어나길 바랐습니다.”


에디터 진성훈
sh.jin@gongshall.com
사진 권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