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공셸TV 윤기원의 아티스톡

GONG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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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S : 화가의 초상


원색과 검은 라인만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윤기원 작가. 어쩌면 단조롭게만 보이는 그의 작업들이 어느덧 스무 번째 개인전을 맞이했다. '사람이 좋아 사람을 그린다'는 작가는 지난해부터 공셸TV <윤기원의 아티스톡>을 통해 인터뷰어로서 많은 화가들을 만나 왔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통해 '화가의 초상'이라는 동시대 작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난 1년여 간 그와 함께 작가들을 만나고 <아티스톡>을 이끌어온 소회를 남겨본다.



존재의 의미는 타자로부터

<화가의 초상>을 바라보는 PD의 회상


문화플랫폼 공셸

대표 김민겸


우연의 음악 :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일은 늘 그렇듯 우연히 시작됐다. 윤기원 작가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떠오른 건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였다. 립싱크를 통해 음치와 실력자를 가려내는 음악쇼에 출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부진 체격에 거친 수염, 댄디한 헤어스타일까지... 작가 윤기원의 첫인상은 화가보다는 헬스트레이너에 가까웠다. 실력자라면 ‘팝아티스트’, 음치라면 ‘헬스트레이너’... 대략 그런 구도면 재미있지 않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윤기원 작가는 음치도, 실력자도 아니었다. 그리고 우린 ‘아티스톡’을 시작했다.

윤기원의 20번째 개인전 <화가의 초상>은 공셸TV <윤기원의 아티스톡>과 궤를 같이한다. 공셸은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었고, 윤기원은 ‘화가의 초상’을 계획하고 있었다. ‘작가가 작가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공통의 목표를 찾았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획자이자 달변가인 윤기원은 MC로서, 인터뷰어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젊은 작가 집단 ‘스튜디오 유닛’을 운영했던 경험은 누구보다 넓은 작가 네트워크를 자랑했다.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내며 60여 명의 작가를 만나왔다. 이제 그 또 하나의 결실, <화가의 초상>을 만나볼 차례다.


장인희, 162x130.3cm. acrylic on canvas. 2020


작가 미상 :

그릴 것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윤기원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면 항상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윤연선의 <얼굴>이다. 다소 서글픈 가락의 이 노래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그렇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윤기원 하면 ‘얼굴’이다. 20년간 꿋꿋하게 얼굴만을 그려온 윤기원에게서 얼굴 이상의 것을 보려면 캔버스는 얼마나 더 커져야겠는가?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아빠 얼굴 그리고 나니 잠이 들고 말았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회화, 특히 초상화의 기본 덕목은 대상을 얼마나 잘 재현했는가에 있다. ‘실물과 똑같다’, ‘사진 같다’ 혹은 ‘닮았다’, ‘안 닮았다’. 거기에 인물의 내면과 정신이 깃들면 ‘베스트’로 꼽는다. 다른 측면으로 대상의 심연을 표현주의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초상화들도 그만의 방식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그런 면에서 윤기원의 초상화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실화도, 그렇다고 추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이 문제적 인물화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인물을 극도로 단순화시킨 묘사는 사실적이지만 깊은 여백을 남기고, 여백은 구체적이지만 지극히 추상적인 색면으로 채워진다. 이는 실재하는 인물에게서 현실성을 배제하는 행위로, 일종의 타자화 과정이자 보편성을 담보하는 장치가 된다. 그래서일까.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작품 이미지는 다분히 디지털적이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오리지널’ 작품은 비현실적 아우라를 뿜어낸다.


아트놈, 116.7x91cm. acrylic on canvas. 2020


김연수, 116.7x91cm. acrylic on canvas. 2020


화가의 초상 :

존재의 의미는 타자로부터

윤기원의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색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원색으로 인물을 묘사하는데, 이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찰나의 감정으로 윤기원의 작품에서 가장 주관적이며, 가장 충동적인 요소다. 화려하게 떠오른 색들은 수차례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붓 자국조차 사라지는 ‘색면’ 그 자체가 되고, 동양화에서 ‘먹선’이 여백 위에 인물을 그려내듯 색면 위에 검은 라인을 그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작가가 소재를 정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윤기원의 초기작들은 그가 동경했던 영웅들로 이루어졌다. 마이클 조던이나 영화 속 캐릭터와 같은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차용해 재생산한 것이다. 그가 팝아트의 범주에서 논의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돌연 ‘Friends’ 시리즈를 통해 대중적이지 않은, 너무나도 사적인 관계의 인물들로 붓을 가져갔다. 이는 윤기원의 작품 세계를 바라볼 때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진짜 사람’을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영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윤기원의 ‘작업의 목적’은 ‘기록’으로 귀결된다. 그와 관계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자,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곧 대상을 통해 작가 스스로 존재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그의 친구를 보라’는 말처럼, 윤기원은 그렇게 빈 잔 채우듯 끊임없이 타자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기록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전시 <화가의 초상>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얼굴이자,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윤기원의 자화상이다.

성태진, 80.3x116.7cm. acrylic on canvas. 2020